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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18. 2023

[D-197] 위로를 받기 위하여

169번째 글

인간은 위로를 받기 위하여 많은 것들을 스스로 발명해 냈구나. 지난 며칠간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했던 생각이다. 장례 예식이나 종교는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였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슬픔과 충격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도록,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곧바로 할 일들이 시작된다. 사망 진단서를 떼는 일과 장례식장을 수소문하는 일, 상복을 준비하고, 장례 물품을 준비하고, 고인을 모시고 장례식을 시작하고, 연락을 돌리고, 손님을 맞는 등 수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몰아친다. 그래서 유족들은 당장 해야 할 일이 쌓여 있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다. 곧바로 무언가를 해야 하고, 많은 일들을 처리하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하고 나면 몸이 피곤해서 고인이나 스스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곯아떨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으로 고통받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장례 절차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유족들에게 할 일들을 주어서, 너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종교는 이런 비슷한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수행한다. 종교는 고인이 좋은 생을 잘 마무리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사후 세계를 믿던 믿지 않던, 신의 존재를 믿던 믿지 않던, 고인이 이제 더는 고통받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고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 것이 산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 준다. 우리 집안은 천주교라서 장례 절차에 미사와 연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마 제사나 다른 종교 의식도 비슷한 효과를 줄 거라고 생각한다. 장례 미사를 드리면서 신부님과 모인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떠난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라는 기도문을 읊을 때, 나는 할머니께서 기쁘게 빛을 향해 가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할머니께서 이 미사를 지켜보셨으면 참 흡족해하셨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믿음도 없고 종교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사람인데도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 드리고 나니 위로가 됐다. 


그동안은 장례 예식이나 종교 의식이 허례허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그저 전통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쓸데없는 일, 의미 없는 일, 귀찮은 일이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를 잘 알게 되었다. 물론 종교를 갖게 되었다거나, 장례 예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종교에 그다지 감흥은 없다. 장례식에도 불필요한 절차나 지나치게 형식적이라 유족들을 고생시키는 부분들이 있다. 뭐든지 너무 과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러한 형식적인 것들이 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새벽 미사에 참석하고 납골당에 가서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와 기나긴 낮잠을 자고 깨어나서,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 할머니께서 천국에 올라가시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
2023년 6월 18일,
침대에 엎드려서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Evgeny Lazarenko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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