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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08. 2023

[D-358] 더 격렬하게 놀고 싶다는 욕구

여덟 번째 글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이미 놀고 있지만 더 재미있게, 더 훌륭하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런 기분은 대체로 밤 12시 이후에 찾아온다. 피곤하고 졸려서 눈이 감기지만 이대로 자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루를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무언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하고 아주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런 기분 때문에 나는 굳이 졸음을 쫓고 이리저리 헤맨다. 그런데 이미 피곤해서 뭔가를 정말로 격렬하게 하거나 집중해서 할 수는 없는 상태다. 그래서 TV 리모컨을 집어 들고 끊임없이 채널을 돌려가며 재미있는 것을 찾거나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보려고 한참을 검색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 보면 딱히 격렬하게 놀지도, 적극적으로 재미를 찾지도 못한 채 별다른 수확 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잠들게 된다. 한 시간 전보다 더 피곤한 상태로, 아까 전에 그냥 잘걸 후회하면서.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런 욕구는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시간도 낭비하고 체력도 낭비하고 잠을 자는 시간도 줄어서 다음 날 아침을 더 피곤하게 시작하게 된다. 아침부터 피곤하다 보니 낮에도 피곤하고 일하는 효율도 떨어지고 머릿속도 어지럽고 쉽게 지친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나는 가끔 이 '격렬하게 놀고 싶은 욕구'에 빠져 무의미한 밤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 욕구는 보상심리에서 파생된다. 내가 오늘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냈으니까, 그렇게 고생한 만큼 퇴근 후 갖는 '나만의 시간'은 반대로 아주 멋지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낮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밤에 받고 싶어 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격렬하게 놀고 싶은 욕구는 그러면 안 되는 시기일수록 더 강해진다. 일이 정신없이 바쁠 때, 내일도 할 일이 산더미 같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때, 평소보다 더 피곤할 때···. 사실 이런 시기에는 그냥 빨리 자서 피로를 풀고 개운하게 일어나 맑은 머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이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이성적 판단은 욕구로 인해 흐려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냥 어제 별달리 재밌게 놀지도 못하고 늦게 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인간이 자극을 찾아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자극은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내 삶의 원동력이 되거나 일상 속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또 더 거창하게는 인류가 나아갈 수 있는 발전적인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자극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뻔한 자극을 굳이 찾으며 탐닉할 필요는 없다. 얼마 뒤 찾아올 나쁜 결과를 다 알면서도 그러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고.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기 파괴적 욕구도 섞여 있는 것 같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고, 그런 파괴는 내가 가장 손쉽게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기에 유혹적이다. 단순히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 같은 것뿐 아니라 이 '격렬하게 놀고 싶은 욕구'도 이런 파괴 행위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순간의 자극을 위해서 내일의 나를 희생하는 것이니까. 이런 욕구가 내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 어떻게 하면 유혹을 뿌리치고 차분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슬프게도 아직 그 답은 찾지 못했다. 바로 며칠 전에도 이런 욕구에 빠져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후회하며 잠들었었다.


그래서 오늘 적어 두는 이 글은 앞으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이다. 또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순간의 자극을 즐기기 위해서 괴롭혀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두려는 기록이다. 지금 당장 이런 욕구를 떨쳐 버리겠다는 맹세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배려하고 사랑해 주겠다는 약속으로서 오늘의 기록을 남겨 둔다.



/

2023년 1월 8일,

베란다 옆에 앉아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ürge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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