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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09. 2023

[D-357]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아홉 번째 글

내가 뭔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모두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제각각으로 다 다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라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흠결투성이로 느껴질 수 있다. 또 반대로 내가 정말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라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다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 줄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그것의 가치가 깎이지도 않고, 내 사랑이 의미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걸 다 알고 있는데도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악평이 들리면 속상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비판하는 글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려다가도 속으로 괜히 발끈하게 된다. 왜 사람들이 이 재미를 몰라줄까, 왜 내가 느낀 것을 이 사람은 느끼지 못한 걸까, 하며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실제로 댓글로 싸움을 걸고 다니거나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속으로 혼자 생각하고 속상해할 뿐이다. 잠시 내적으로 툴툴거리다가 곧바로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곧바로 후회하고 반성하고는 '그럴 수도 있지, 취향 차이일 수 있지.' 하며 넘어가게 된다. 물론 속상한 마음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취향의 차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크게 상처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내가 그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의 의견에 신경 쓰고 휘둘리게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이 혹평을 하는 것을 들으면 과연 내가 이걸 좋아해도 되는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예전처럼 열광적으로 좋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단점이 보이게 되기도 하고, 전에는 그냥 흐린 눈으로 넘겼을 단점들이 점점 거슬리게 되기도 한다. 내가 줏대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왜 싫어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참 신기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만 해도 그렇다. 어떤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수만 가지로 다양하다. 백 명이 그 영화를 좋아한다면, 백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영화를 수백 가지 이유로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수백 가지 이유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 영화를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2시간 동안 지루하게 봤더라도 마지막 단 1초의 짧은 장면, 단 한 마디의 대사로도 그 영화를 사랑할 수 있다. 영화의 모든 것이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 영화 속 배우의 연기나 배경음악이나 화면 색감이나 의상, 소품을 좋아할 수도 있고. 또는 영화 자체는 엉망진창이었어도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내 감정과 경험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 때문에 상처받는 것은 더더욱 의미 없는 일이다. 내 경험과 그 사람의 경험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을 당연히 그 사람은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이 보는 것을 나는 절대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가끔 속상하긴 하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본능적인 영역이다. 그러니까 내가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하는 대상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혹평을 보아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면 된다. 좋아한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니까. 이유를 찾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냥 좋아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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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9일,

야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버스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Devon Bree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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