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Jan 10. 2023

[D-356] 자책 대신 분석과 계획을

열 번째 글

어제는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모바일 게임을 좀 하다가 늦게 잤다. 야근을 하다 와서 피곤한 상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또 '더 격렬하게 놀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전 글 참고)'이 찾아와서 게임을 평소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해 버렸다. 그래도 12시 전에는 진짜 자려고 했는데 하필 그만하고 자려던 그 시점에 게임에서 무료 아이템 30분짜리를 선물로 줘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게임을 계속하다가 좀 더 늦게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어젯밤의 선택을 후회했다.


피곤한 눈가로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나는 계속 '어제 왜 그랬지'와 '그냥 일찍 잘걸'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늦게까지 놀다가 자 버린 나 자신이 한심했다. 오늘의 내가 누릴 짧고 순간적인 자극을 위해서 내일의 나를 갉아먹지 않기로 결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늦게 자면 이렇게 피곤할 걸 몰랐던 것도 아닌데. 자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이제 그만 자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자책하는 대신에 오늘을 계획하는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책하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책을 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왜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지를 떠올려 보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적이지 않은 자책이 너무 길게 이어질 때가 많다는 거다. 나를 미워하고 나를 혼내고 상처 주는 것을 반복하게 될 때. 아까 샤워기 앞에서의 나처럼 말이다.


이런 자책은 성장의 1단계일 수는 있어도, 길어지면 결국 나를 상처 입히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게 된다. 내 실수를 파악하는 것만 마치고 이 반성과 자책에서 빨리 2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2단계는 분석하는 단계이다. 왜 내가 그런 실수를 했는지를 감정적이지 않게,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서, 아주 냉정하고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거다. 그게 완료되면 3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3단계는 지금 나의 상태를 검토하는 단계이다.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몸 상태는 어떤지, 정신 상태는 어떤지, 체력은 어떤지를 면밀히 살피고 확인해야 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4단계가 이루어진다. 4단계는 계획하는 단계이다. 2단계에서 분석한 원인과 3단계에서 분석한 현황을 가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단기, 장기적 결과를 도출해 보는 것이다.


이 4단계를 모두 거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인다. 오늘 아침의 나로 간단히 예를 들어 보면 이렇게 된다.


1단계(파악): 어제 나는 피곤한데도 늦게까지 놀다가 잤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제 내 행동은 그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2단계(분석): 나는 피곤하면 오히려 더 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긴다. 이 욕구를 이겨내기 어렵다. 전에도 여러 번 이런 적이 있다. 이 욕구의 기반에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바람과 만족감에 대한 추구가 깔려 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내게 만족감을 주는 무언가를 아주 재밌게 하고 잠들고 싶은 기분이다.

3단계(검토): 나는 지금 머리가 좀 아프고 잠이 덜 깬 듯이 몽롱하다. 몸도 무겁고 체력도 떨어져 있는 상태다. 뒷목도 굳어서 뻣뻣하다. 오늘 출근하면 해야 되는 일들이 쌓여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오늘 퇴근 전까지 끝내야만 하는 일이다. 또 몇 가지는 많이 급하지는 않은 일들이다.

4단계_1(단기 계획): 우선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잠을 깬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서 찌뿌둥한 몸을 풀어 준다.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기고 스케줄을 짠다. 스케줄에 따라 하나씩 처리한다. 체력이 떨어져 있으니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만 마치면 집에 와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일찍 잔다.

4단계_2(장기 계획): 다시 이런 '격렬하게 놀고 싶은 욕구' 상황에 빠지면 넷플릭스로 1시간 정도 길이의 재밌는 다큐를 하나 틀어 놓고 사이클을 타자. 운동을 하면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이 들 것이다. 그리고 신체적 활동을 했으니 지쳐서 자고 싶어지기도 할 것이다. 만약 자고 싶지 않아지더라도, 다큐를 다 보고 나면 꼭 자려고 노력하자. 어떤 다큐를 볼지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미리 몇몇 다큐들을 찜해 놓자.


자책을 하며 나를 거듭 괴롭히는 것보다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실제로 오늘 나는 피곤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했지만, 피곤한 것 치고는 아주 효율적인 하루를 보냈다. 자책보다는 분석과 계획이 내 하루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다. 나를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봤자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 때문에 더 힘들어지기만 한다. 실수를 안 할 수는 없고,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도 없겠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노력해 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

2023년 1월 10일,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기대앉아서 유튜브로 '잠이 잘 오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Foundry Co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D-357]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