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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20. 2023

[D-195]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171번째 글

누구에게나 남의 떡은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욕망한다. 이런 예시를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나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성격인데, 즉흥적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나는 감정 이입을 아주 잘하는데, 냉정하고 나와 대상을 객관화할 수 있기를 원한다. 나는 추위를 잘 타는 편인데, 차라리 더위를 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글동글하고 순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는데, 각지고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란다.


외모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내 외모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외모보다는 인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해 보이는 인상을 갖고 있다. 좋게 말하면 착하게 생긴 거고, 나쁘게 말하면 만만하게 생긴 거다. 이런 인상 때문에 때때로 손해를 보기도 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꼭 길을 물어보는 사람(대부분의 경우 사이비 종교를 권유하려는 사람으로 밝혀진다)에게 붙잡히고, 음식점이나 매장 직원에게 무시당한 적도 많다. 그런데 이런 건 뭐, 괜찮다. 인상 덕을 본 적도 있고, 또 나와 반대로 강렬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그들만의 고충이 또 있을 테니까. 인상은 바꾸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불만인 것은 내 인상에는 내 취향의 차림새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은 '프렌치 시크'스러운 세련되고 절제된 스타일과, '보헤미안 룩'으로 대표되는 자유분방하고 대범한 스타일이다. 이 두 가지 모두 내게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프렌치 시크는 검은색, 흰색, 회색 등 무채색을 많이 사용하는데 나는 색깔이 좀 들어간 옷을 입었을 때 얼굴이 더 잘 산다. 나는 올블랙으로 꾸미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검은 옷을 입으면 얼굴이 온통 창백하고 핏기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보헤미안 룩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정한 차림이 훨씬 잘 어울린다. 화려한 프린팅이 들어간 헐렁한 옷을 겹쳐 입거나 다양한 악세서리를 걸치면 옷과 내 얼굴이 붕 뜨는 느낌이다. 정말 야속하게도, 나는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나는 내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의 옷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내게 정말 안 어울리는 스타일을 좋아하게 됐을까? 아마 스스로 갖지 못한 것들을 갈망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내가 입을 수 없기 때문에 갈망하고, 내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목말라하는 거다. 야속하고 섭섭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원래 이런 식이다. 어쩔 수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내 얼굴, 내 몸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들은 잘 안 어울린다는 것을.


그래서 옷을 입을 때마다 나는 갈등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을지, 아니면 내게 어울리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을지. 갈등의 결과는 적절한 중첩이다. 해결 방안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이 양 극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어 주는 거다. 그리고 가끔은 조금 덜 어울려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으면 된다.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가끔은 세상과 타협하고 가끔은 내 취향과 의견을 밀고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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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0일,
버스에 앉아서 좌석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Lucas Hoang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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