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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21. 2023

[D-194]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

172번째 글

어제 나는 속이 확 풀리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도 밝아졌는지,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도 팀원에게서 들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어제 드디어 입 밖으로 꺼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팀장님께 말했기 때문이다.


어제 팀장님과 잠시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이런 지원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프로젝트를 계속 지속하기 어려우므로, 프로젝트 중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소심하고 눈치를 보는 성격이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는 용기를 내서 전부 이야기했다. 무례하거나 감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숨김없이 전부 말을 했다. 이건 꼭 해야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은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내기 부적절하기 때문에 꺼내서는 안 되고, 어떤 말은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올 때가 있다. 하지만 해야 하는 말은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 말을 해야만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고, 그 말을 해야만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참는다면 그것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더 나빠지기 전에 말이라도 해 봐야 한다. 그게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어제 내가 해야 하는 말을 했을 때, 다행히 팀장님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어쩌면 팀장님은 내가 이런 말을 해 주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팀장님도 똑같이 생각하고 계셨는데, 나 혼자 지레 겁을 먹고 속을 태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어제 함께 대화를 나누며, 역시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물론 이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어제 용기를 내서 한 말이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다. 내가 이 말을 했던 건 팀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말을 했기 때문에 어제 나는 속이 후련하게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제는 오랜만에 잠도 푹 잤다. 그것만으로도 말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제 말을 꺼내길 잘했다고 말이다.



/
2023년 6월 21일,
버스에 앉아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Ed Leszczynskl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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