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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22. 2023

[D-193] 싫어하는 것이 싫다

173번째 글

싫어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지독히도 싫어하면서, 내가 그것을 싫어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곱씹고 되새김질하면서, 내가 왜 그것을 싫어하는지를 소리 지르고 알리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싫어하기를 바라면서, 부정적인 에너지에 잠식되고 싶지 않다.


내가 말하는 '싫어한다'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싫은 감정을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꼭 필요한 곳에 목소리를 내고, 분노하고, 저항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일상 속에서, 취향이나 개인의 선호에 해당하는 영역의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을 디폴트로 갖고 있는 것 말이다.


전에도 굳이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또는 그냥 '싫다'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굳이 자세하고 어감이 강한 어휘로 공들여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제 나이가 더 들고 체력이 더 떨어지면서 점점 싫어하는 감정에 피로를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싶어졌다.


나는 체력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이 부족한 체력을 괜히 싫어하는 데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싫어하는 데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너무 많이 발산해서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인생은 짧다. 이 찰나에 불과한 인생을, 공연히 싫어하며 허비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저 사랑하기에도 시간은 너무나도 부족하므로.



/
2023년 6월 22일,
버스에 앉아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Sandro Katalin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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