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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23. 2023

[D-192] 내일 아침의 나를 위해

174번째 글

어제는 그다지 일진이 좋지 못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쉽게 피로해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아마 덥고 습한 날씨 영향도 있었을 거고, 전날 잠을 잘못 자서 몸이 뻐근했던 탓도 있었을 거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어제의 나는 출근하기 전부터 이미 피곤한 상태였다. 게다가 출근 이후부터는 잘 풀리지 않는 회사 일 때문에 또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다. 한숨이 푹푹 나오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래도 내가 어제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친구와 저녁에 만나서 맛있는 걸 먹기로 약속을 잡아 놨었기 때문이다. 퇴근만 하면 친구와 만나서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견딜 만했다. 어쩌면 오늘 스트레스를 받은 만큼, 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는 거의 금주에 가까울 만큼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어제는 술이 고프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였었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술을 잔뜩 마실 작정이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내일 아침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무거운 몸으로 일어나는 모습, 술에 취하면 잠이 잘 안 오기 때문에 더 피곤해진 상태, 속이 좋지 않아서 물만 겨우 마시는 아침의 나를 상상하고 나니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 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많이 피곤할수록 술을 적게 마셔야 한다고 전에 생각했었던 것도 떠올랐다. 그럴 때일수록 내 몸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고, 더 잘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 친구와 만나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와인 한 잔 정도만 즐겼다. 와인이 워낙 맛있어서 조금 더 먹고 싶었고 한 잔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일의 나를 위해서 자제하기로 했다. 그렇게 참은 결과, 오늘 아침 개운한 머리와 가뿐한 몸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곧바로 헬스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아니라 내일 아침의 나를 위해 살라는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바로 지금만을 위해 살면 순간적인 행복을 위해 좋지 못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밤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술을 많이 마시면 당장 그 순간은 즐거울 수 있지만 다음날 아침엔 고생을 하게 된다. 너무너무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어서 밤을 새워서 보고 나면 보는 동안은 즐겁지만 다음 날 아침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후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내일 아침 잠에서 깰 때의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자제력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일 아침처럼 '현재'의 범위에 약간은 들어가는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는 거다.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면 현재의 즐거움을 놓칠 수 있고, 너무 순간의 즐거움만을 바라보다 보면 나 자신을 해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미래인 내일 아침이 딱 적당하다. 달리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달리기를 할 때 우리는 앞을 보고 달린다. 너무 먼 곳도 아니고 너무 가까운 곳도 아닌 눈앞을. 너무 먼 곳을 바라보면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그렇다고 발밑만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장애물이나 길이 끊기는 곳을 미처 못 보고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을 보고 뛰는 것, 내일 아침을 보고 한번 고민해 보는 것, 그게 나 자신의 롱런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
2023년 6월 23일,
식탁에 앉아서 창 밖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oritz Mentge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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