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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24. 2023

[D-191]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175번째 글

나는 가치 판단이나 평가를 일상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 자체가 무례하기도 하고, 굳이 가치를 매기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가치 판단적인 어휘를 쓰면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었던 일이 얄팍해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또 그렇게 가치를 매겨 버리면 그 가치에 상응하는 만큼의 효과를 내가 보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나왔을 때,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께 친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 친구는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하게 빠른 승진을 하게 된 것도 신기한 일. 옛 친구와 연락이 닿아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게 된 것도 신기한 일. 믿었던 사람의 예상치 못한 민낯을 보게 되어 실망했던 것도 신기한 일. 내가 다니는 회사와 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가까이 있어서 이렇게 가끔 만나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신기한 일. 그렇게 표현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일이던 인생에 새로운 이벤트가 생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이렇게 인생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굳이 따져 보지 않고, 그 일이 중요한 일인지 별 것 아닌 일인지를 굳이 고민해 보지 않고, 그냥 '내 인생에 예상치 못한 신기한 이벤트가 생겼네!'라고 이해하는 거다. 그러면 가치를 굳이 매겨 보지 않을 수 있다. 너무 기대하거나 너무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과도하게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지 않을 수 있고, 내 인생에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느끼는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저 평소처럼 내 삶에 집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어차피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지금 아주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나중에 나쁜 결과로 내 삶에 돌아올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시간이 지나 보니 좋은 기회였던 걸로 밝혀질 수도 있다. 아주 막중한 임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주 중대한 일로 내게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일의 경중이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건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사건들은 그저 내 인생에 일어나는 이벤트일 뿐이다. 예상치 못했던 신기한 이벤트.


오늘 나는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공연을 보는 이 이벤트가 내게 어떤 신기한 경험을 안겨 줄지 기대된다.



/
2023년 6월 24일,
극장 로비에 앉아서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Kyle Hinkso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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