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Jun 25. 2023

[D-190]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176번째 글

어지러운 세상이다.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해서 수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환경 파괴는 날로 가속화되고 있고, 경기도 침체되고 있고, 차별과 혐오로 인한 갈등 및 범죄가 심각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죽어 간다.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 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정말 신기한 사건들이,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역사책 속에 중요하게 기록될 어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훗날 미래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 시기의 역사를 배우면서, "그 땐 그랬대!"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지?" "정말 끔찍하다." 같은 말들을 주고받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조만간 인류가 멸망해 버려서 이 시기의 역사를 가르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다양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은 든다.


이 결정적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최악으로 만드는 데에 적게 일조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인 이상 나는 자원을 소모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고,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인 이상 나는 이 사회의 공범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사실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그저 태어났기에 열심히 살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세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런 식의 우울에 빠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죽어야겠다는 말도 아니고 죽고 싶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답을 찾고 싶다.


내가 역사책을 읽으며 부정적인 의미로 정말 다이나믹한 시대, 살기 힘든 최악의 시대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지 궁금하다. 아마 그 사람들도 나처럼 지금은 역사책에 기록될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테고, 어떻게 살아야 인류를 조금이라도 더 생존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했을 테다. 그 사람들이 과연 답을 찾았을지 알고 싶다. 답을 찾은 이가 있다면 묻고 싶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갖는 책임감마저 작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는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덜 나쁜 곳으로 만들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 의무를 실천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행동하고는 있지만, 이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모르겠다. 이 판단은 아마 미래의 인류만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내게 주어진 책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또 이런 생각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최대한 사랑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냥 살아갈 수밖에.



/
2023년 6월 25일,
창가에 앉아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leksandr Ledogorov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191]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