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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01. 2023

[D-184] 나는 이런 사람이다

182번째 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이는 데에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면 그 순간부터 그게 하나의 잣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정보라도 나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면, 다른 사람들은 그 정보를 기반으로 나를 판단하고 추측하게 된다.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그냥 나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어도 그렇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내게 꼬리표를 달아 버리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꼬리표는 한번 달리고 나면 떼어내기 정말 어렵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운동을 하고 있다'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다고 하자. 이 말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뭔가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정보도 아니고,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정보이다. 하지만 이 정보는 나의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틀을 제공한다. 그래서 다음 날 내가 약간 피곤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오늘도 운동을 많이 해서 피곤한가 보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피곤한 기색을 보인 이유는 야근을 해서일 수도 있고, 잠을 못 자서일 수도 있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두통이 찾아와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전날 제공한 정보로 인해 붙은 '요즘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사람들은 내 피로의 원인을 운동으로 지목하게 되는 것이다.


꼬리표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버리는 규모의 것까지 아주 다양한 크기로 붙을 수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마이너리티에 속한 사람일 경우,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혐오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 드러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거다.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원래부터 그런 사람일 뿐인데,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차별이 시작된다는 것이 새삼 비논리적이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 겁이 나고 머뭇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때 차별과 혐오가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라면, 그건 이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런 이유로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도 이런 이유로 주저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
2023년 7월 1일,
책상에 앉아서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Look Up Look Down Photography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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