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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02. 2023

[D-183] 끊임없이 기대하자

183번째 글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일은 행복하고 두근거리는 일이지만, 동시에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는 일이기도 하다. 기대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겪게 되는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기대하면 결과물이 좋았어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120%만큼을 기대했다면, 99%를 해냈어도 그 결과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내가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정도 괜찮은 결과를 얻게 되면 작은 성과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 그게 80%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기대하는 일에는 위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기대는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한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엠제이는 여러 번 이런 말을 한다. "실망하게 될 거라고 미리 예상하면, 실제로 실망할 일은 없으니까." 엠제이의 말처럼,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다. 정확히 이런 이유로 나는 기대하기를 꺼려한다. 똑같은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만족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기대를 해서 내 행복을 내가 깎아먹을 필요는 없는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일부러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혹시라도 내가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하지만 기대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희망을 품는 일이다. 희망은 우리를 기대하게 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희망을 버리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가물거리는 등불을 굳이 꺼 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그 등불에 의지해서 한밤중의 어두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불이 가물거린다면 불씨를 잘 살려 볼 궁리를 해야지, 불어서 꺼 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하고 또 기대해야 한다. 기대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실망을 미리 준비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비록 내가 품은 기대가 크나큰 실망과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줄지라도, 끊임없이 기대해야만 한다. 백 번 기대하고 백 번 실망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젠 '기대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실망한 뒤에도 바로 다음 기대를 품는 법'을 연습해 보려 한다. 끊임없이 기대하는 법을 한번 배워 보려 한다. 백 번 기대해서 백 번 실망했다면, 곧바로 백 한 번째 기대를 마음속으로 품고 또 기대해 보려고 한다. 실망하지 않는 법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실망은 실망대로 온전히 느끼고 싶다. 깊이 실망하고, 크게 좌절한 뒤, 다시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품고 싶다. 너무 길게 좌절하지 않는 단단함과 실망한 뒤에도 다시 기대할 수 있는 용기, 이런 것들을 나는 배우고 싶다.



/
2023년 7월 2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an Tinneberg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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