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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30. 2023

[D-185] 책으로 인생 익히기

181번째 글

이틀 전, 수학 익힘책처럼 인생에도 익힘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글 보러가기) 수학책으로 개념과 원리를 공부하고 수학 익힘책을 풀면서 확실히 이해하고 익힐 수 있는 것처럼, 인생도 인생 익힘책이라는 것이 있어서 미리 연습해보고 익숙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 글을 쓰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인생 익힘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 인생 익힘책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연습하고, 책을 통해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삶과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익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수학 시험지라면, 내가 읽는 책들은 수학 익힘책인 셈이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삶의 순간들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게 아무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사건들에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불확실한 미래가 조금 덜 불확실해지는 것도 아니고, 고민과 걱정, 불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책들은 내게 답을 떠먹여주지 않는다. 수학 익힘책처럼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난이도의 문제와 자세한 해설을 제공해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책들은 내가 모르던 인생의 한 단면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책은 내게 낯선 세상을 보여주고, 처음 보는 사실들을 보여주고,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보여준다. 책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게 만들어낸 이야기이던, 과학 지식이던, 역사의 한 장면이던, 누군가의 경험이건, 운율을 맞춘 글이건, 평가와 해설이던 간에. 어떤 주제를 다룬 어떤 장르의 책이던 동일하다. 책들은 내가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게 새로운 일이 닥쳐왔을 때, 그 사건을 내가 조금 덜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덜 놀라고, 덜 비명을 지르고, 덜 충격받고, 덜 절망하도록.


그래서 인생 익힘책이란, '책' 그 자체이다. 모든 책은 인생 익힘책이다. 모든 예술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인생 익힘책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시험을 보기 전에 미리 공부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익힘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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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0일,
식탁에 앉아서 에어프라이어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Blaz Photo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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