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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29. 2023

[D-186] 식물에게서 배우기

180번째 글

대나무는 휘어지지 않고 곧게 하늘로 뻗어 자라는 특징 때문에 전부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대나무를 보면 '대쪽 같다'는 표현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꼿꼿하고 휘어짐이 없어서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대나무가 지조와 절개가 있기 때문에 곧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가 곧게 자라는 것은 그것이 대나무의 타고난 특성이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그저 제 성질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날 뿐이고, 거기에 '지조'니 '절개'니 하는 의미를 붙인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늘 사물로부터 상징을 읽어 낸다.


지금껏 사람은 정말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서, 수많은 것들로부터 교훈을 얻으려고 애써 왔다. 식물만 봐도 그렇다. 곧게 뻗은 대나무를 보며 우리는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곧게 자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의미라면, 소나무는 이런 맥락에서는 형편없는 나무이다. 이리저리 휘어져서 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나무에서도 똑같이 선비의 모습을 읽어 낸다. 소나무는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늘 푸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나무와 대나무는 생김새와 특징이 전혀 다른데도 비슷한 상징을 갖게 된다.


물론 대나무와 소나무는 둘 다 상록수라, 사시사철 잎이 푸르다는 점 때문에 비슷한 의미가 부여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통점 없이 완전히 다른 식물과 비교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잔디 같은 식물. 만약 아름드리 소나무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면, 잔디 같은 작고 튼튼하지 못한 식물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져야 말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잔디로부터도 배울 점을 찾아낸다. 잔디는 바람 가는 대로 눕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난다는 점, 발에 밟히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 등의 특성을 갖고 있고, 잔디도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꺾이지 않는 의지를 상징하게 되었다. 특히 민중의 의지, 보통 사람의 의지를.


왜 사람들은 그냥 생긴 대로 살아갈 뿐인 식물들에게 이런 의미를 잔뜩 부여했을까?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고, 상징을 만들어 내길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늘 배우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화를 통해 커진 두뇌는 더 많은 것들을 더 복잡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인간은 '지혜'라는 것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지혜를 쉽게 쌓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징인 것 같다. '언제나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저 소나무를 보아라. 소나무는 추운 겨울 눈을 맞으면서도 늘 푸르다. 너도 저 소나무처럼 늘 푸르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 남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생존에 유리했을 테고, 그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똑같은 말을 후손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다양한 것에 다양한 상징을 부여하며 살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대나무처럼, 소나무처럼, 잔디처럼, 그리고 다른 많은 식물들이 상징하는 것처럼, 굳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새벽부터 비가 와서 후덥지근하고 왠지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만 같은 날, 피곤해서 눈을 깜빡이며 출근을 하고 있는 아침 시간, 오늘의 내가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갖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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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9일,
버스에 앉아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Clement Souchet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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