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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11. 2023

[D-174] 나를 표현하는 방식들

192번째 글

옷은 무조건 편해야 한다. 그게 내 패션 철학이다. 예뻐 보인다거나 몸의 단점을 가려준다거나 장점을 살려준다거나 그런 건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예쁘고 잘 어울리는 옷이어도 입었을 때 불편하면 하루종일 신경이 쓰여서 절대 입지 못한다. 내가 입는 옷들은 무조건 입었을 때 편하고 입고 벗기 쉽고 옷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것들이다. 신발은 무조건 바닥이 푹신한 운동화. 품이 넉넉하고 감이 부드러운 옷들. 악세서리는 거의 하지 않고, 다양하게 매치해서 입기 좋도록 색깔이나 무늬는 되도록 무난한 것으로.


내가 원래부터 이런 패션 철학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편한 것보다는 예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하이힐이나 굽이 높은 샌들을 자주 신고 다녔고, 목걸이나 팔찌 같은 다양한 악세서리도 하고 다녔고, 불편할 정도로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나 허리를 조이는 옷이나 짧은 치마도 좋아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옷들은 더 이상 입지 않게 되었다. 굳이 예뻐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옷들을 견딜 체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의 나는 '편함'이라는 가치를 옷의 최우선 가치로 두게 되었다. 그 '편함' 안에서 내 고유의 스타일도 찾았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팔찌를 하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 비즈 팔찌나 가죽 팔찌, 가느다란 금속 팔찌를 여러 개 레이어드해서 하고 다니고 싶다. 팔찌가 예뻐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서 지금 내 옷차림에 뭔가를 더 더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꼭 팔찌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을 조금 더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우연히 노점상에서 팔찌를 여러 개 늘어놓고 파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뭔가 이끌림이 느껴졌고 팔찌라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노점을 지나쳐 갔지만, 그 이후로 어쩐지 팔찌가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원체 편한 옷차림을 추구하다 보니 패션을 통해서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지 않았었다. 패션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말을 이해는 했지만 실제로 체감하지는 못했었는데, 요즘 그 말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고 꺼내 놓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 하나로 패션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팔찌를 하고 다닌다면 아무래도 평소에 맨 팔로 다닐 때보다는 불편할 것이다. 걸리적거리기도 할 것이고,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신경에 거슬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던 예전의 내가 감수하던 불편함과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예뻐 보이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몇 가지를 기존 옷차림에 더 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과연 팔찌를 살 것인지. 정말로 팔찌를 하고 다니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직은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나를 표현하고 어떻게 나를 드러낼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어느 만큼 '편함'을 포기할지를.



/
2023년 7월 11일,
침대에 엎드려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rtem Beliaiki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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