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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12. 2023

[D-173]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립지 않다

193번째 글

보통 사람들은 어린아이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애틋해한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반짝반짝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이 애틋하지 않고 그립지 않다.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이 반짝거린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시절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왜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애틋해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지 이해는 간다. '어린아이 시절'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들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어서 때 묻지 않았고 순수함을 간직했다는 점, 그래서 무모할 수 있었고 용감할 수 있었고 패기 넘칠 수 있었다는 점, 자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었다는 점, 걱정할 것이 없었다는 점, 두려울 것 없이 도전정신을 가지고 무작정 달려 나갈 수 있었다는 점, 악의 없이 솔직할 수 있었다는 점 등등. 그리고 결코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 이런 점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시기를 애틋해하고 그리워한다. 이 부분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체감하며 느끼는 것은 다르다. 나는 알긴 알지만 체감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자랑스럽지 않다. 자랑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부끄러움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든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린아이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나열한 보편적인 어린아이로서의 특징을 나는 오히려 지금 더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린아이 시절의 내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나? 잘 모르겠다. 나는 조숙한 아이였고, 그래서 순수함보다는 순수한 척하는 영악함을 더 많이 갖추었던 것 같다. 내가 무모함이나 용기나 패기를 갖고 있었던가? 나는 오히려 지금이 더 용감하다. 어릴 때 나는 지금보다 더 겁이 많았다. 나서는 것도 훨씬 두려워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이나 믿음을 가졌었나? 나는 오히려 지금이 더 자신감 넘친다. 어릴 때 나는 정말 소심한 아이였다. 발표를 하다가 울어 버리는 그런 아이였고, 하루종일 고민에 빠져 지냈었다. 그 시절의 내가 걱정이 없었나? 아니, 난 지금이 더 걱정 없이 살아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걱정이 많은 건 같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걱정을 다루는 법이나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쳤다. 그래서 전보다 더 마음 편히 살고 있다. 내가 도전 정신이 있었나? 내 기억으로는 없다. 나는 똑같은 일상을 보내기를,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뭔가 인생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던 아이. 그럼 솔직함이나 당당함은 내가 갖추고 있었던가? 나는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솔직하고, 지금이 더 당당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까 봐 모든 걸 다 꾹 참고 눌러 담았지만, 지금은 꼭 해야 하는 말이라면 용기 내서 말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하는 법도 알고, 꾹 참아서 생긴 스트레스를 푸는 법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서 되찾고 싶은 점이 거의 없다. 건강하고 유연하고 회복력 좋은 신체를 제외하면 정말로 나는 그 시절의 내게서 그립거나 애틋한 점이 하나도 없다. 예전의 내가 '반짝반짝했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그 시절처럼 나를 바꾸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과거가 그립지 않다는 것은 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예전의 내 모습을 폄하고 창피해하기보다는 내가 전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그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질 일만 남은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 나가기로 했다. 여기에 내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과거의 나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지만, 미래의 나는 지금 내 눈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
2023년 7월 12일,
식당에 앉아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커버: Image by Jesse Bows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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