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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10. 2023

[D-175] 질투가 아닌 감탄을

191번째 글

나는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나 리듬에도 귀 기울이지만 유독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편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고 약간은 강박적으로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내 성향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가사가 없는 노래보다는 가사가 있는 노래를 더 선호하고, 노랫말을 아름답고 재치 있게 쓴 노래들을 좋아한다. 특히 가사와 음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노래를 들으면 감탄을 하고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또 그런 잘 쓴 노래들을 들으면 질투가 난다. '대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지?' 같은 생각이 들고, 여기서 '나는 과연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결국 '나는 이런 가사는 영원히 쓰지 못하겠지'라는 실망과 비관까지 가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작사가인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도 아니고 그동안 노래 가사를 써 보려고 노력했던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실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감탄은 감탄으로 끝나지 못하고 꼭 못난 질투와 비관적인 태도로 변질되고 만다.


이건 비단 노래를 들을 때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을 읽을 때도 나는 질투하고 비관한다. 잘 쓴 소설을 읽으면 '나는 과연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울림을 주는 시구를 읽으면 '나는 이런 시는 절대로 못 쓰겠지.' 비문학 도서의 재치 있는 표현을 읽으면 '나는 왜 이런 표현을 못 쓰는 걸까?' 이런 식이다. 무엇이든 잘 쓴 글을 읽으면 나는 나 자신의 모자란 점을 계속 파고들고 나 자신을 꾸짖게 된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못 쓴 글을 읽어야 한다던데, 왜 그런 건지 이해가 된다. 잘 쓴 글을 읽는 것보다 엉망인 글을 읽는 것이 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 쓴 글을 읽으면 나처럼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낙담하게 되곤 한다. 반면에 못 쓴 글을 읽으면 '이 정도는 나도 쓰겠네!' '내가 이거보다는 더 잘 쓰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연필을 잡고 뭐든지 써 내려가게 되는 거다. 그래서 적당히 못 쓴 글을 읽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글쓰기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가끔은 적당히 못 쓴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당히 질투하고 적당히 자책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잘 쓴 글을 읽으면 부럽고 질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질투와 시샘이 너무 속을 썩이게 놔두면 안 된다. 그게 나를 지나치게 매섭게 꾸중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지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가 될 정도로만, 딱 그 정도로만 질투하고 나를 채찍질하면 된다.


너무 많이 질투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꼬이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2023년 7월 10일,
버스에 앉아서 덜컹이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Eric Masu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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