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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17. 2023

[D-168] 오늘의 운세 주머니

198번째 글

나는 가끔씩 심심풀이 삼아서 하루의 운을 점쳐 본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책을 이용한 것이다. 머릿속에 숫자를 하나 떠올린 뒤,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서 그 숫자에 해당하는 페이지의 첫 번째 단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 단어는 때로는 '희망'이나 '애정'과 같이 좋은 의미를 갖고 있을 때도 있고, '심사숙고'나 '성찰', '내려놓다'처럼 뭔가 더 생각해 볼 만한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할 때도 있고, '재앙', '불운' 같은 좋지 못한 의미를 갖고 있을 때도 있다.


며칠 전에 이 방식으로 오늘의 운세를 점쳐 봤을 때 나온 단어는 '공포'였다. 그 단어 때문에 나는 그날 내내 괜히 찝찝한 기분에 시달렸고, 아침에 책을 펼쳐 본 것을 후회했다. 재미 삼아 해보는 테스트지만 내가 심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무리 별 생각 없이 해보는 것이라도, 앞으로는 함부로 운세를 점치치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이런 결심을 지금까지 수십 번은 더 한 것 같긴 하지만.


이날 이후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이 운세 테스트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걸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테스트로 바꿔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좋은 말로만 가득한 책을 펼쳐 본다면, 어떤 페이지를 펴든 간에 늘 좋은 의미의 단어가 첫 페이지에 적혀 있을 테니까. 그래서 언제나 오늘의 운세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고, 나는 이 운세의 영향을 받아서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말로만 가득한 책은 없다. 아무리 예쁜 시집이나 격언집이라도 모든 단어가 다 좋은 말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운세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 볼 생각이다. 주머니에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내게 영감을 주고 위로를 주었던 단어들을,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서 넣는 것이다. 사랑, 희망, 감사, 고요, 친절, 믿음, 진실함 같은 단어들을 말이다. 그리고 오늘의 운세를 점치고 싶을 때마다 이 주머니에서 하나를 뽑아서 보려고 한다. 내가 뽑은 단어가 내 하루를 채울 수 있도록, 그 단어의 영향을 받아서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뮤지컬배우 시에라 보게스는 몇 년 전에 'light lessons'라는 패키지를 출시했었는데, 이 패키지는 작은 주머니에 20개의 영감을 주는 문구들을 적어 넣은 것이다. 불안에 잠기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주머니를 열어서 하나를 뽑아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할 것인지를 되새기자는 의미에서다. 나도 나만의 'light lessons' 패키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 시에라의 패키지를 사서 쓸 수도 있지만 나만의 버전을 따로 만들고 싶다. 내가 직접 고른 단어들이라야 나에게 특별한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떤 단어들로 주머니를 채울 것인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그냥 하나씩 생각이 날 때마다 종이에 적어서 안 쓰는 파우치에 넣어 두려고 한다. 그렇게 가볍게 한번 시작해 보고 싶다. 나만의 운세 주머니를 만드는 일을 말이다.



/
2023년 7월 17일,
소파에 앉아서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ika dam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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