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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18. 2023

[D-167] 패배주의를 학습한 까닭

199번째 글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시도하지도 않고 안 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는 나 자신을. 괜한 노력을 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는 나 자신을.


오늘 아침 나는 회사 업무와 관련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팀 내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나 내년에 진행하면 좋을 것 같은 과제를 고민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하자고, 어차피 뭘 시도해 봐도 안 될 것 같으니 그냥 하지 말자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이때 내 머릿속에는 정확히 이런 생각이 떠올랐었다. "내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 안 돼."


이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이 정도까지 패배주의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었나 싶어서. 그렇게 놀란 마음으로 내가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잠시 생각을 해 보자 금세 답이 나왔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어서, 그게 학습이 되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것도 내가 잘못했거나 실수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그런 경험을 거듭하게 된 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촉박해서 의견을 반영할 수가 없다던가, 전사적인 이유로 진행 중인 과제를 중단해야 했다던가, 논의가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던가, 그 외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들로 인해 최근 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내내 답답했고 내내 피곤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어차피 시도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났고, 그 결과 나도 모르게 패배주의를 조금씩 학습해 나갔던 것 같다.


회사 일에 매몰되어서 과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안 될 거야'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한번 학습한 패배주의는 쉽게 희석되지 않고, 업무에서의 패배주의적 사고는 회사 밖의 내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예민함을 줄이고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고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좋은데, 그게 이런 맹목적인 패배감과 냉소로까지 발전해 버리면 안 된다.


오늘 "내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하고 깜짝 놀랐던 것만큼, 이런 마음가짐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중간중간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원인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내 경우, 요즘 겪고 있는 번아웃에 가까운 증상들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만사 피로하고 힘들다 보니 평소보다 더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작은 실패, 사소한 좌절들도 더 마음에 담아 두게 되기 때문이다. 번아웃 때문에 패배주의가 자리 잡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나는 번아웃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 보려고 한다. 지금은 에너지가 많이 빠져나간 상태라 변화에 대한 믿음이나 변화를 이끌어 나갈 힘이 부족하다. 일단 잘 쉬고 피로를 해소하고 나면 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가 충분히 쌓이고 나면 시도해 볼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에너지와, '내 시도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더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에너지와, '그 시도가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 시도를 준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말이다. 



/
2023년 7월 18일,
카페에 앉아서 떠들썩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arius Matuschzik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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