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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21. 2023

[D-164] 센스 있는 사람

202번째 글

센스라는 말은 어떻게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감각 있다, 눈치 있다, 판단력이 좋다, 재치 있다, 사회성이 뛰어나다, 늘 적절하다, 딱 알맞게 한다, 스킬이 풍부하다 같은 말들도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센스 있다'는 말은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 그리고 센스는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성격인 것 같다. 센스가 없어도 노력하면 나아지기는 하지만, 노력으로 얻어내는 센스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센스는 약간 결이 다르다. 센스 있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심지어 생각하지 않아도 곧바로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다.


나는 센스 있는 사람이 부럽다. 내가 여러 면에서 센스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소하게는 옷을 입는 방식부터 크게는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방식까지. 어떤 사람들은 옷이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 어떤 색깔이 본인에게 잘 받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센스의 영역인 것 같다. 나는 그런 센스가 부족해서 옷의 기능적인 면에 집중하는 편이다. 대화를 할 때도 그렇다. 나는 유려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말솜씨나,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유쾌함은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모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중심이 되고 모임을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주는데, 이런 센스는 아마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분야에 센스가 있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센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반대로 여러 가지 분야에 센스가 없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 다 센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 센스가 있는 영역이 다른 것 같다. 다시 말해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센스는 타고난다는 뜻이다. 나는 웬만한 일들에 대부분 센스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지만, 정말 잘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정리정돈이다. 나는 정리정돈을 아주 센스 있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자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따로 계획하거나 어떻게 담아야 좋을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곧바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물건들을 집어넣을 수 있다. 테트리스를 하듯이 모서리가 딱 맞아 들어가도록 물건들을 상자 안에 배치할 수 있고, 상자에 담긴 물건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아주 적절하게 쌓아 올릴 수 있다. 이 부분은 내가 타고난 센스인 것 같다.


빨래를 개거나 가방을 쌀 때도 이런 센스는 어김없이 발휘된다. 나는 동작이 느리고 몸이 둔한 편인 데다가 손이 야무지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빨래는 기가 막히게 잘 갠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냥 집어 들어서 개는데도 남들보다 더 빠르고 남들보다 더 각이 살아있고 남들보다 더 구김 없이 갤 수 있다. 가방을 쌀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방 안에서 물건을 찾기 쉽도록, 물건들이 흐트러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가방을 들었을 때 무게중심이 잘 맞도록 짐을 싸는 능력이 있다. 내가 빨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개 봤거나, 가방 싸는 일이 숙련되었을 만큼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잘하는 거다. 내가 타고난 정리정돈의 센스 덕분에. 정리하는 능력은 내가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내 강점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패션 센스나 화술 센스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내 정리 센스를 부러워할지 모른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우리는 늘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욕심내고 부러워한다. 이 부러움은 때로는 센스를 키우기 위한 노력과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정도가 과하면 때로는 자괴감이나 질투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일이 자괴감과 질투가 되면 더 발전하고자 하는 내 의지에 걸림돌이 된다. '난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과해서 지나친 질투와 패배감으로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쓴 이 글처럼. 나는 옷은 잘 못 입고 대화도 잘 못 하지만 정리정돈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고 거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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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1일,

버스에 앉아서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Félix Prado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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