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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23. 2023

[D-162]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는 것

204번째 글

나는 취향에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다. 한 번은 이게 좋았다가, 다음 번에는 다른 게 좋다. 어떨 때는 이게 하고 싶지만, 어떨 때는 하고 싶지 않다. 취미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대체로 한결같은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면 입맛만 해도 그렇다. 우리 언니는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언니는 찹쌀도너츠를 좋아하고 떡볶이를 좋아하고 쫄면을 좋아하고 돼지껍데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이런 일관성이 없다. 나도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하지만 찹쌀도너츠와 떡볶이는 좋아하고 쫄면과 돼지껍데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식감 외에도 다른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내 입맛은 언니와 다르게 좀 더 까다롭고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럽다.


영화 취향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저 영화도 좋아할 거야'라던지 '이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면 저 캐릭터도 맘에 들 거야'라는 공식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내게 그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 주곤 하는데, 이렇게 추천받은 영화나 캐릭터 중에서 정말로 내 마음에 들었던 경우는 많지 않다. 나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가득 배치되어 있어도 어떤 영화는 나를 사로잡지 못한다. 또 어떤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단 한 가지만 가지고 있는데도 나를 푹 빠져들게 만든다.


나는 이렇게 변덕스럽고 입맛을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걸 나는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좋은 쪽으로 해석해 내고 싶다. 이를테면 나는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또 나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여러 가지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는 성향의 사람이다. 이렇게 해석해 보면 일관성이 없다는 내 성격은 나쁜 특성이라기보다는 내 강점이나 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만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내 변덕은 극복해야 하는 단점이 아니라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어떤 단점들은 고치고 없애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단점은 그대로 장점이 된다. 단점과 장점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동전의 양면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변덕이 다양성으로 해석될 수 있듯이.


이렇게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동전뒤집기 같은 생각은 내 자존감에도 도움이 되고, 내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나는 입맛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뭘 좋아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신에 '나는 입맛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 볼 수 있다.'로 바꾸어 생각하면, 꾸준히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며 풍부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또 '나는 영화를 보는 시각이 까다롭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영화를 좋아할 수 없다.' 대신에 '나는 영화를 보는 시각이 까다롭기 때문에 한 작품을 다방면에서 해석하고 분석할 수 있다.'로 바꾸어 생각하면, 영화를 볼 때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와 같이 생각한다면 더 이상 발전하기 쉽지 않다. 나는 그냥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 영화 취향이 변덕스러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단점'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역으로 활용해 보는 것, 때로는 그런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동전의 반대편에서 볼 수 있는 시각 말이다.



/

2023년 7월 23일,

소파에 앉아서 음악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Prakash Meghani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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