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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25. 2023

[D-160] 사람들이 내게서 기대하는 것

206번째 글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거절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두려워해서이기도 하고, 미움받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면서 나 자신에게 벌을 주려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남들이 내게 제공하는 서비스와 친절에 부담이 아닌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내게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 부분을 잘 파악해야만 만족스러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이 내게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 아침 그 생각이 들었고, 이 부분을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게서 기대하는 것은 대체로 나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내가 꼼꼼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상대방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면, 그 사람은 내게서 빈틈없는 일처리와 실수 없는 결과물,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챙기는 태도를 기대할 것이다. 내가 차분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면, 감정적으로 평온하고 늘 침착하며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를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이 기대하는 만큼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하면 그 사람들은 내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이 달라지거나, 안 좋은 이미지가 생겨 버릴 것이다.


바로 여기서 딜레마가 하나 생긴다. 처음부터 상대방이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조금만 잘해도 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 내가 덜렁거리고 실수가 잦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한두 가지 실수를 해도 평소보다 잘 했다, 디테일을 잘 챙겼다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만 열심히 해도 괜찮고, 부담을 갖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반대로 내가 꼼꼼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같은 결과물을 내민다면 그 사람은 실망할 것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내가 평소보다 잘하지 못했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런 사람과 함께할 때는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안고, 잘 해내야 한다는 과중한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이 언제나 고민이다. 내가 '얼마나' 잘 한다고 상대방에게 인식시켜야 하는지가. 과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너무 많이 부담을 갖지 않으면서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물론, 내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직 나 자신을 만족시키면 되고, 나 자신이 열심히 했다면 그것으로 괜찮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적당히 넘기면 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 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이런 욕구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칭찬받고 싶은 욕구. 잘 보이고 싶은 욕구.


그래서 결국 또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것이다. 적당히 열심히 하되 대충 하지는 않기. 최선을 다하되 너무 많이 노력하지는 않기.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내일의 체력을 오늘 끌어다 쓰지 말기.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나를 가장 먼저 챙기기. 그렇다고 일부러 못하는 척 나를 속이기는 말기. 이렇게 중심을 잡으면 이 '기대'의 딜레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마 세상을 조금 더 살아가다 보면 내 발밑의 줄이 점점 더 굵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외줄타기라고 생각했던 길이 사실은 그냥 걸어가도 괜찮은 오솔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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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5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Yasmine Duchesne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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