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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26. 2023

[D-159] 단어보다는 문장

207번째 글

지난주에 나는 '오늘의 운세 주머니'를 만들어야겠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글 보러가기). 오늘의 운세를 읽는 것이 나의 하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역이용해서 작은 주머니에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 동기부여가 되고 영감을 주는 단어들을 적어 두고 매일 아침 하나씩 뽑아서 그날의 운세로 삼아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단어들을 넣으면 좋을지 짬이 날 때마다 생각하는 중이다. 일단 몇 가지 꼭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단어들은 있다. 사랑, 희망, 감사, 긍정의 힘 같은 단어들이다.


그런데 내가 아침에 뽑아서 보고 싶은 '단어'들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적어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문장은 단어보다 더 깊이 뇌리에 박히기 때문이다.


문장은 기억하기도 되뇌기도 쉽다. 단어 100개를 순서대로 외우는 것은 어렵지만, 문장 100개는 비교적 빠르게 외울 수 있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문장에 맥락이 있으면 더 쉽고, 멜로디가 붙으면 더 쉽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영어단어책을 통째로 암기하라고 시킨다면 나는 절대 못 한다고 손을 내저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집을 주고 외우라고 시킨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본집이 훨씬 두껍지만 이야기를 담은 문장들은 훨씬 더 기억하기 쉽다. 노래 가사는 더더욱 쉽고. 실제로 나는 통째로 기억하고 있는 뮤지컬 극본들이 몇 개 있고, 노래 수백 곡의 가사를 외워서 부를 수 있다. 문장은 단어보다 더 잘 기억되고, 더 오래 기억되고, 잊어버리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금세 다시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리고 문장은 더 직관적이고 더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태양'이라는 단어를 보면 태양의 이미지를 그려 볼 수는 있지만, 태양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해석해 내기는 어렵다. 나는 오늘의 운세 주머니에 '태양'이라는 단어를 넣으려고 했었다. 마음속에 어두운 생각들이 자라날 때마다 태양을 바라보는 것처럼 빛과 희망을 떠올리고 거기에 집중해 보겠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이 은유는 내게만 통하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만 통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태양'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나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오늘 생각하는 태양의 의미와 내일 생각하는 태양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몇 년 뒤의 나는 오늘의 운세 주머니에서 '태양'이라는 단어를 뽑고 "태양이 너무 밝으면 그늘로 몸을 피하라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장은 이렇게 해석이 갈릴 확률이 적어진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보라. 그리하면 그림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헬렌 켈러의 명언)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한두 가지로 고정된다. 훨씬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운세 주머니에 단어가 아닌 문장을 적어 넣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감동을 주었던 문장들,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으려고 한다. '사랑' 대신에 '항상 사랑하고 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를, '자신감' 대신에 '비법 재료는 없어(There is no secret ingredient).'를 적어 넣는 식으로. (각각 작곡가 故 이영훈의 말과 영화 <쿵푸 팬더>에 나오는 대사)


어떤 문장들이 내게 영감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고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앞으로는 짬이 날 때마다 이 생각을 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하나씩 문장을 적어 주머니를 채워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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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6일,

버스에 앉아서 에어컨 바람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Will van Wingerde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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