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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27. 2023

[D-158] Believability

208번째 글

내가 영화나 공연을 볼 때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은 'believability'이다. 그 연기가 정말 믿기는지로. 번역을 하자면 진실성, 신뢰성, 사실성, 핍진성, 신빙성, 개연성, 리얼리티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연기를 스토리텔링으로 보는 편인데, 그 배우가 연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정말로 그 배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믿어지는지가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어떤 배우들은 단순히 감정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게 되어서 슬픈 상황이라면, 이 배우들은 '슬픔'을 보여준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는 뛰어날 수 있지만, 그 감정이 어떤 사연으로 인해 생겨났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주는 감동은 일차원적이고 짧다.


어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영화의 줄거리가 보인다. 왜 그 캐릭터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가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는 상황을 예로 들면, 이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방금 연인과 이별했구나'를 읽어 낼 수가 있다. 단순히 슬픔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슬픈지 그 이유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배우들의 연기는 감정만 전달하는 배우들보다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 어떤 배우들은 그 배우의 연기를 보면 그 캐릭터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그 캐릭터의 성격과 사고방식이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는 상황이라서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척을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 캐릭터는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그 부분을 읽어 낼 수가 있다. 그 캐릭터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넘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배우들에게서는 그 캐릭터의 인생이 보인다. 그 캐릭터의 과거와 미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극 중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 그 캐릭터의 인생이, 그 캐릭터가 겪어왔을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이 이런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해서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척하며 자존심을 세우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며 절대로 약점을 보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습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이전에도 몇 번이고 이렇게 감정을 눌러 담고 강한 척하려고 애써 왔다는 사실이 이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보인다. 앞으로 계속 이런 태도를 유지하다가 언젠가 한번 무너져내리는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도 보인다. 그래서 이 배우들의 연기는 생생하고 진실되고 진심으로 믿어진다. 그래서 아주 높은 몰입력과 감동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이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진실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얼마나 'believable'한 지, 고민해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다.



/

2023년 7월 27일,

버스에 앉아서 덜덜거리는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Kevin Schmid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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