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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l 28. 2023

[D-157]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209번째 글

나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내가 특별히 경계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생각은 어느새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서 머릿속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가 들어앉으면 나는 무기력과 패배감의 수렁에 빠져 버린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는 작게는 나 개인의 성취나 인생에서부터, 크게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와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이어진다. 예를 들면 자기계발을 위해 외국어 강의를 듣는 도중,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더 이상은 공부를 하기 싫어진다. 또 분리수거를 하는 도중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이 들면 어차피 기업이나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훨씬 더 많을 텐데 내가 분리수거를 잘해서 뭐 하나 싶고 한숨이 나온다. 또 환경을 위해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여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을 때,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가 또 찾아와서 어차피 지구온난화 때문에 몇십 년 뒤에는 다 죽는다는데 나 하나가 아껴서 무슨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든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가 곧 '우린 다 죽을 거야'로 변하게 된다는 점. 특히 환경을 생각할 때면 그렇다.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 인류의 멸종 등, 요즘 환경 문제만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예전부터 기후 위기로 인해 2030년에는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2030년이 점차 가까워져 오니 더욱 불안과 무력감이 커지는 것 같다. 이제 뭘 하던 안될 것 같고, 이렇게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는구나 싶고,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고,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그냥 제멋대로 살면 안 되나 하는 위험한 생각이 드는 거다.


하지만 내일 죽는다고 해서 오늘을 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정말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눈에 그 희망이 아직 보이지 않을 뿐. 미국 거대 기업이 하루에 1000톤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오늘 내가 분리수거한 캔 하나로 인해 인류가 생존하게 될 수도 있다. 오늘 내가 텀블러에 물을 담아 마셔서 버려지지 않은 페트병 하나로 인해 인류의 수명이 1년 더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 그걸 지금의 내가 예측하지 못할 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나는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대신에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게 터무니없는 생각일지라도, 순진해 빠진 어리석은 믿음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실제로 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다 소용없다는 생각에 손 놓고 제멋대로 산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뭐라도 해 본다면 끈질기게 노력한다면 정말로 빠져나갈 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의 나는 내일이 오기 전에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내일모레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사과나무를 심고 싶다. 그 사과 한 알이 내일모레의 인류를 구할 수도 있을 테니까.



/

2023년 7월 28일,

버스에 앉아서 목이 마른 기분을 느끼며.



*커버: Image by ActionVance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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