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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04. 2023

[D-150]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필요하다

216번째 글

나는 어린 시절에는 내가 천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어린아이다운 공상일 수도 있고,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의 자만심이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이런 믿음을 약간씩은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더 뛰어나고, 뭐든지 더 잘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자라면서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렇게까지 훌륭한 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린 나의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붙었다. 새롭게 조립된 나의 세상은 '평범한'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그저 70억 인구 중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가 슈퍼히어로처럼,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역사 속 위인들처럼 위대한 영웅이 되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이젠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어떤 면에서는 남들보다 못한, 그래서 평균을 내 보면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지금은 그 사실에 감사한다. 내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나는 내가 평범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범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낼 수 있다. 매일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일 말이다. 평범한 사람처럼 노력하고 평범한 사람처럼 자리를 지키며 평범한 사람처럼 책임을 다하는 일을 나는 잘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곳에 가서 묵묵히 내 할 일을 할 수가 있다. 맨 앞에 서지는 못할지라도, 가장 높이 서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여기서 세상을 지탱하고 서는 일을 나는 할 수가 있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용히 세상을 짊어질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별한 누군가가 되려고 너무 애쓸 필요도 없고, 천재가 아니라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내 쓸모를 다할 수 있는 자리,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면 최선을 다해 그 자리에 서 있는 일, 그 자리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걸어가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일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가치이고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단한 업적을 해내도 대중들이 그걸 받아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중의 책임을 나는 다해야 한다.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1명의 리더가 아니라 100명의 평범한 영웅들이니까.



/

2023년 8월 4일,

식탁에 앉아서 창 밖의 소음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Soragrit Wongs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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