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Aug 09. 2023

[D-145] 모른다고 말할 용기

221번째 글

나는 앎과 배움에 대한 집착을 좀 가지고 있는 편이다. 좋게 해석하자면 학구열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은 논문도 찾아 읽고, 다큐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강의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정보를 찾아서 인터넷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내 성향은 타고난 것도 있고, 꽤나 학구적이었던 집안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뽐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나는 지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지식을 자랑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똑똑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이런 순간들을 좋아하는 까닭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거나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운 마음이. 나는 내가 무언가를 모르거나 못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무시할까 봐 두렵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실망시키게 될까 봐 두렵다. 이 지점에서 내 나쁜 습관 중 하나가 생겨났다. 바로 아는 척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아는 척을 한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처럼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모른다고 말하고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나의 무지를 그렇게 쿨하게 인정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아는 척을 해 왔기 때문에 나는 '잘 모르는 주제가 나왔을 때 대화를 이끌어가는 법'을 터득했다. 이건 일종의 대화 기술이다.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주 광범위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말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한 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테크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나는 처음에는 입을 닫고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재테크도 성향이 맞아야 되는 것 같아요. 자기한테 맞는 투자 방식이 각자 있더라고요." 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투자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지 어떤 것이 맞지 않았는지를 서로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가만히 들으며 가끔씩만 맞장구를 쳐 준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고 혼자 남았을 때,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들 중 내가 모르는 것을 찾아본다.


이 '아는 척하는' 화술과 태도는 낯선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다. 배움은 혼자 찾아보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배우는 것들은 내가 인터넷에 검색해 보거나 책, 강의를 읽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내가 모른다고 인정하고 사람들이 내 눈높이에 맞춰서 친절하게 해주는 설명을 들으면서 배우는 것들이 확실히 있는데, 이 부분을 나는 못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결국 내 '아는 척하는' 태도는 내 학구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앎과 배움을 탐하는 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지식을 얄팍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은 이 화술을 잠시 놓아두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여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무시와 실망에 대한 내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 배움을 청할 용기 말이다. 또 여기에는 자신감과 자존감도 필요하다. 모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당당한 태도, 무시당하더라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자존감 말이다.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아는 척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래야만 내가 갖고 있는 앎과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



/

2023년 8월 9일,

버스에 앉아서 버스가 나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risa Chattasa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146] 모순된 인생의 모순된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