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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10. 2023

[D-144] 딱 보람찬 정도로만 바빴으면 좋겠어

222번째 글

사람은 참 이상하다. 바쁘게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바쁘지 않은 상태가 되면 마음이 영 불안해진다. 늘 놀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 놀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과연 놀아도 되는지를 걱정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만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적어 봐야겠다. 내 마음은 참 이상하다. 바쁜 것도 힘들어하지만 바쁘지 않은 것도 불안해서 힘들다. 또 바쁘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이 바쁘다고 해서 늘 뿌듯함과 긍지를 느끼는 것도 아니고, 쉬엄쉬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업무량이 줄어들면 뭔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지난달에도 그랬다. 7월 말까지만 해도 나는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일했을 정도로 업무에 치여서 살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할 때까지의 시간이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이때 나는 정말 많은 일들을 쉴 새 없이 처리했지만, 거기에 성취감을 느끼거나 보람을 느끼거나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오히려 나 자신이 한심했었다. 일을 하느라 내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인 휴식을 포기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고 일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때 나는 이 일만 끝나면 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그 일이 끝나고 조금 여유가 생기자,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빠져나간 자리에 또 다른 스트레스가 채워졌다. 내가 바쁘지 않다는 데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였다. 과연 내가 이렇게 안 바빠도 되는지 걱정하고, 나는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인지를 한심해하느라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번 주는 달랐다. 이번 주는 바쁘게 지냈지만 기분이 좋았다. 출근길에 어깨가 무겁지 않았고 퇴근길에는 보람차다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일을 끝내면 곧장 다른 일을 시작하며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피로가 아니라 오히려 활력을 느꼈다. 그 이유는 우선 내가 지금 하는 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납득하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고 느끼지 않고, 나 자신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설득당한 상태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예전만큼 많이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퇴근하고 나서 나만의 시간을 확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일만 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일 생각을 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런 균형이 있기 때문에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딱 보람찬 정도로만 바빴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집중력을 발휘해서 잡생각 없이 열심히 일을 하고, 일이 끝나고 나면 내 개인적인 생활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딱 보람차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살면 이 생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딱 지금 정도로만 바쁘게 살 수 있다면.



/

2023년 8월 10일,

소파에 앉아서 TV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lesia Kazantcev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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