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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11. 2023

[D-143] 삶은 유한하고 이별은 늘 예정되어 있기에

223번째 글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싶다.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놓치지 않고 모조리 해 보고 싶다. 똑같은 일이 내일도 그대로 일어난다고 해도, 그 일을 오늘 경험하는 것과 내일 경험하는 것은 다르기에, 오늘의 경험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내일이 되어 버리면 오늘의 경험은 결코 다시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경험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부모님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같이 먹어보고 싶은 음식도 많고, 같이 보고 싶은 풍경도 많고, 같이 해보고 싶은 경험들도 많다. 또 나는 부모님께서 더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영영 가보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여행지에 부모님과 함께 가 보고 싶다.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낯설고 이국적인 요리를 함께 먹으며 영 입맛에 안 맞는다고 불평하고 싶다. '요즘 젊은 애들이나 가는 카페'라고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곳에 손잡고 가서 같이 한 잔에 만삼천원이나 하는 요상한 핑크색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 패러글라이딩이나 번지점프, 서핑처럼 특이한 아웃도어 활동들을 함께하고 싶다. 더 늦어서 부모님의 체력이 받쳐 주지 못하게 되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또 만약 내가 강아지를 기르게 된다면, 최대한 많은 것들을 강아지가 경험할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좋은 것은 다 해주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간식들을 다양하게 사다 주고 싶고, 같이 여행도 가고 바다도 보고 계곡도 보고 싶다. 산책을 할 때도 매번 다른 길로 가서 새로운 냄새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매일 같이 잠들고 싶고, 강아지가 핥아서 새벽에 잠에서 깨고 싶고, 졸린 눈을 비비며 비척비척 걸어 나가 밥을 주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싶다. 친척집 강아지를 잠시 맡아 줬던 것 말고는 한 번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해 주고 싶을 것 같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언젠가 이별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해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 삶에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삶이 너무나도 짧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더더욱 짧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이 열정은 유한한 삶으로부터 나온다. 삶은 유한하고 이별은 예정되어 있기에, 내 생명을 포함해서 삶의 모든 요소들과 한 번씩은 반드시 이별을 겪어야 하기에, 나는 이 100년 남짓 되는 짧은 생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아보려 발버둥친다.


이 짧고 유한한 생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나는 오늘도 이 생각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

2023년 8월 11일,

버스에 앉아서 창 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uliette G.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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