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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08. 2023

[D-146] 모순된 인생의 모순된 나

220번째 글

나는 고집이 좀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옳은 것과 틀린 것을 확고하게 구분해 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굳게 믿고 싶어 한다.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길은 꼭 가야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시키지 않아도 밤을 새워 가면서 열심히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괴로워 몸부림치면서 겨우 해낸다. 이렇게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좋게 말하면 자기 주관이 뚜렷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에 까다롭고 아집이 있는 거다.


그런데 나는 내가 다방면으로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한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고집불통인 면이 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할 것이다. 성격이 까다로운 것도 맞는 말이다. 때로는 아집으로 느껴질 만큼 완강한 태도를 유지하기도 한다는 것도 나를 겪어 봐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는 건 내가 느끼는 내 성격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내가 잘 흔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의 자극만 주어도 쉽게 흔들리고 많이 흔들린다. 나는 심지가 굳고 뚝심이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잘 설득당하고 잘 갈등한다. 내 마음은 언제나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모순적인 일이다. 고집이 세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열정을 쏟는 면모도 있는데, 또 잘 설득당해서 의견을 바꾸는 경우도 잦다니.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다. 고집스러우면서도 잘 흔들리고, 완강하면서도 잘 물러나는 사람.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말 몇 마디에 생각을 바꾼다. 나는 이렇게나 모순된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모순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렇게 모순된 사람이라는 것이 싫지 않다. 처음에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고 내 변덕스러운 성격과 태도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내가 모순된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받아들였다. 잘 만든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입체적인 면모가 있는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이 입체적인 면모로 인해서 나는 잘 적응하고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는 풀처럼 굽어지고 물처럼 변화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나무처럼 절대 굽히지 않으면서, 이 모순된 인생을 모순되게 잘 살아갈 거라고 말이다.



/

2023년 8월 8일,

버스에 앉아서 희미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Weiqi Xiong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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