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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15. 2023

[D-139] 완벽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227번째 글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헬스장에 등록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운동이 내가 원하는 경험을 해보기 위한 준비 단계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고,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질의 몸을 갖게 되면, 그렇게 준비를 다 마치고 나면, 그때부터 하려고 계획한 것들이 많이 있다.


우선 나는 주짓수나 무에타이, 영춘권 같은 무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무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체력이나 자세 같은 게 중요할 테니까 일단 몸을 좀 만들고 나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지금처럼 약한 몸으로 무술을 배우면 자칫 잘못하다간 다칠 수도 있으니까. 또 나는 클라이밍도 해 보고 싶었다. 너무 재밌어 보여서 해 보고 싶은데, 지금처럼 근육이 부족한 몸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클라이밍을 제대로 해 보기 위해서 나는 일단 운동을 해서 코어 근육을 기르고 악력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이 준비가 되면 그때 클라이밍을 시작해 보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클라이밍을 하러 다녀왔다. 아직 몸이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도. 근육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팔힘이며 코어힘도 많이 떨어지는 몸으로 나는 클라이밍장에 갔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어제 친구가 클라이밍을 같이 해보자고 갑작스레 제안을 해서 엉겁결에 좋다고 해버린 것이다. 내가 이 제안을 수락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오랜만에 친구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이밍을 하든 뭘 하든, 이 친구를 만나서 놀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그냥 무작정 클라이밍을 해보러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동을 하면서 몸이 준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과연 내가 완벽히 '준비'되는 시점이 오기는 할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내 성에 안 차서 이렇게 내내 준비만 하다가 영영 클라이밍을 해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무턱대고 일단 가서 클라이밍을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내가 클라이밍을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클라이밍을 경험해 보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고 동기부여를 받아서 왔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클라이밍장에 갔기 때문에 나는 클라이밍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 내가 실제로 클라이밍을 해 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이걸 재밌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그 벽에 암벽화를 신고 기어올라가 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오늘 내가 완등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던 루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근육과 유연성을 키우고 더 강해져서 다시 클라이밍장에 와야겠다는 결심을, 그러니까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용기를 얻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무언가를 하기 딱 알맞은 시기, 바로 그 순간은 웬만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완벽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며 계속 준비만 하고 앉아 있다면, 영원히 준비만 하게 될지도 모른다.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일단 뛰어들어가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엉망진창이어도, 형편없는 실력으로 도전해서 무참히 실패했어도, 시도해 보았다는 것 자체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 클라이밍장을 나서서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주짓수 도장 간판을 보았다. 주짓수도 클라이밍처럼 이렇게 무작정 시작해 볼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아직 겁이 나지만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 일단 가서 뭐라도 해 보아야 감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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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5일,

소파에 앉아서 피곤하지만 뿌듯한 기분으로.



*커버: Image by S. Tsuchiy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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