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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16. 2023

[D-138] 리셋 버튼을 누를 수는 없으니까

228번째 글

어떤 문제의 원인은 한 가지나 두세 가지다. 이런 문제는 그 원인을 제거하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왜 그 문제가 생겼는지를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제로 해결법을 적용해 보면,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예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도 더 이상 그 문제가 신경 쓰이지는 않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의 원인은 셀 수도 없이 많고 그 원인들이 온통 복잡하게 꼬여 있다. 이런 문제는 원인을 제거할 수도 없고, 만약 제거한다고 해도 올바르게 해결할 수가 없다. 위에서 나열한 문제 해결 단계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봐도 뚜렷한 원인이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 문제가 생겼는지를 원인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 원인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해서 어떤 원인 한 가지를 해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다. 오히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작정 해결법을 시도해 볼 수도 없다.


또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해결하려고 시도해도 언제나 부족하다. 해결법을 찾고 적용하는 그 시간 동안 이미 문제는 그 해결법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만큼 더 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현 시점의 니즈를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이 특징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는 더더욱 까다로워진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나 여러 사회 문제들이 이런 '원인이 많고 복잡해서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의 예시가 아닐까 싶다. 환경 문제에는 수많은 원인과 이해관계와 또 다른 문제들이 얽혀 있다. 다방면으로 뻗쳐 있는 차별과 혐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인류의 시작부터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수많은 원인들과 수많은 증상들을 안고 있다. 그래서 쉽게 해결할 수가 없고 풍선처럼 계속 부풀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면 '리셋 버튼'이 절실해진다. 오직 리셋 버튼을 눌러서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이런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결 방법인 것만 같다. 그래서 문제의 한 가지 원인이 생겨났을 때 그 원인을 제거하고, 또 다음 원인을 제거하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엉킨 실타래를 풀고 싶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복잡한 문제에는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우주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는 '리셋 버튼'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부터라도 뭐라도 해 보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문제가 너무나도 거대하고 너무나도 까다롭고 너무나도 위험해서 그냥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눈을 가린 채 살고 싶어지지만, 그렇게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류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해서 커지기만 할 테니까. 나중엔 정말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그때 뭐라도 했어야 하는데!'하고 후회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려고 노력하는 일, 문제를 이해하고 어떻게든 풀어 보려고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엉킨 실을 이리저리 잡아당겨 보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쉬운 순간이므로.



/

2023년 8월 16일,

침대에 엎드려서 밖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p Valery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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