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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14. 2023

[D-352] 반드시 지금 해야만 한다는 강박

14번째 글

일기는 보통 저녁 때 하루를 돌아보면서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올해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듯이 매일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보통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쓴다. 에세이의 소재도 그날 있었던 일에서 뽑아 오곤 한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내 마음을 진솔하게 적으려면 아침 시간에 일기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 때 쓰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건 위주로 적게 되지만 아침 시간에 쓰면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는 꼭 아침 시간에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화해 일기'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놓고 나와 내가 화해하는 과정을 기록하겠다고 선포를 해 놓았으니 아침에 쓰는 것이 더 맞겠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내가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내가 지금 아프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때 병원에 들러서 잔여백신으로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을 했더니 어제까지는 멀쩡했는데 오늘 아침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이 근육통으로 지끈거리고 머리도 울리는 것처럼 아프고 대상포진에 걸린 것처럼 신경통도 도져서 찌릿찌릿 아프다. 열도 좀 나고 어지럽고 식욕도 없다.


(*백신을 맞고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안티백서가 아니다. 지금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다 보니 꺼낸 말일 뿐이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전에 미리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다시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는 백신을 맞고 하루이틀 아픈 것이 낫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해열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머리가 아파서 넷플릭스도 보지 못하고 심심하게 누워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침대에서 앓으면서도 나는 계속 '아, 지금 글을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 때문에 잠들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결국엔 이불을 젖히고 나와서 노트북 앞에 앉기까지 했다. 열에 들떠서 몽롱한 정신을 붙잡고 욱신거리는 허리와 팔을 애써 무시하며 글을 쓰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또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지금 할 필요가 없는데도 반드시 지금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픈 내 몸과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돌아가서 그냥 잤다. 이따가 일어나서 써야겠다고 계획을 바꾸고 강박을 버리고 나니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4시간을 내리 잤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는 몸 상태가 훨씬 더 나아져 있었다. 머리도 더 맑고 덜 어지럽고 몸이 욱신거리는 것도 덜하고. 심지어 약간 개운하기까지 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서 간단히 뭘 좀 먹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여유롭게 TV를 봤다. 그러고 나자 글이 쓰고 싶어졌다. 아까 '아, 지금 글을 써야 하는데….' 상태일 때는 도저히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당장 해야 되는 것,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또 만약 정말로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더라도 해야만 한다는 심리적 압박에 사로잡히면 할 수 있는 일도 못 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잠시 내려놓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을 편히 먹고 긴장을 풀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마법처럼 머리가 맑아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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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4일,

침대에 기대앉아서 밖에서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örn Hell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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