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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13. 2023

[D-353]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다

13번째 글

상처는 아프다. 상처는 고통스럽다. 상처는 피가 흐르는 자리이다. 상처는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상처는 꿰매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야 하는 곳이다. 상처는 곪고 터지고 덧난다. 상처는 아물기 어렵다.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상처는 지울 수 없다. 상처 입은 사람은 슬프다. 상처는 없을수록 좋다. 상처는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상처는 나를 괴롭게 만든다. 상처는 나를 죽일 수 있다.


상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신체적 상처든 정신적 상처든 상처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누구도 상처를 일부러 받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상처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시인 루미는 이렇게 말한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라고.


내가 말했다: 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그가 말했다: 길가에 내버려 두어라.

내가 말했다: 제 열정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말했다: 계속 불타게 내버려 두어라.

내가 말했다: 제 심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말했다: 그 심장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

내가 말했다: 고통과 슬픔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것들을 그대로 간직해라. 상처는 빛이 네게로 들어가는 창문이다.

- 잘랄 앗 딘 루미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상처는 고통스럽고 슬픈 것인데 그것을 간직하라니. 그 말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말은 더 놀라웠다. '상처는 창문이고, 그 창문을 통해 나에게 빛이 들어온다'는 개념. 만약 상처를 간직하라는 말 뒤에 '상처는 언젠가 나을 테니까'라던지 '상처를 통해 성장하게 될 테니까'라는 말이 따라왔다면 이렇게까지 충격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루미는 상처를 통해 가슴에 빛을 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처가 나를 빛나게 한다고 말이다.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문장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었지만 말로 풀어서 해석해 보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을 시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상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함께'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슬픈 상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루미는 그 상처를 극복할 대상으로조차 보지 않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오히려 루미는 상처를 통해서 마음에 빛을 담는다.


우리는 평소에 대부분의 시간을 저 너머 밖을 바라본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의 시선은 내면으로 향한다. 상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결국 우리는 상처가 주는 고통 속에서 사유하면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루미가 말하는 '빛'은 우리의 내면 그 자체이다. 사람들은 보물을 찾아서 밖에 나가 헤매지만 사실 보물은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보물을 발견하려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안에 무엇보다 아름다운 우주가 있고, 거대한 사랑이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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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3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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