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Aug 21. 2023

[D-133] "이다음엔 뭘 하지?"

233번째 글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이다음엔 뭘 하지?"라는 고민이다. 나는 언제나 다음에 할 일을 고민한다. 아직 해야 하는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벌써 다음 일을 생각하며 걱정한다. 아직 삶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다음 단계가 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궁리한다.


"이다음엔 뭘 하지?" 이건 내 나쁘다면 나쁘고 좋다면 좋은 습관이다. 나는 언제나 다음 일을 미리 염두에 두고 고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수를 적게 할 수 있고 미리 대비를 할 수가 있다. 다음 일이 갑작스레 닥쳐도 당황해하지 않을 수 있고, 또 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수가 있다. 이런 좋은 점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고민은 내게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안겨주기도 한다. 아직 한 가지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다음에 닥쳐올 일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기 때문에 나는 늘 걱정과 근심에 떨고 있다.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에 100%로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도 있다. 다음 일을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열정을 온전히 쏟아붓지 못하고, 늘 일부분을 떼어다가 "이다음엔 뭘 하지?"에 써버리고 만다.


이건 그냥 내 타고난 성격인 것 같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내 성격. 조금 완화해 나갈 수는 있어도 아예 없던 일처럼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미리 고민을 해 두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나는 임기응변에 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하고, 약간 우유부단한 면도 있으며, 예고 없이 덮치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대비하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이렇게 애를 쓴 덕분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부분도 있다. 언제나 다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상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어도 조금은 준비가 된 상태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편히 즉흥적으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온갖 것들에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거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타고난 성격 탓인지 자꾸만 미리 대비하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


나는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현재를 충만하게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다가올 내일을 상상하고 준비하고 싶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는 준비가 덜 되어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법, 가끔은 내려놓는 법, 낮에는 걱정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자기 전에 내일을 준비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요령을 터득하게 될지도 모른다.



/

2023년 8월 21일,

버스에 앉아서 희미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atrick Perkins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134] 세상은 정말 야속한 것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