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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20. 2023

[D-134] 세상은 정말 야속한 것일까

232번째 글

때때로 세상은 나를 도와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참 야속하게도 내 편의를 봐주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지하철 문이 내 앞에서 닫혀 버릴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갈아탈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 버렸을 때도 그렇다. 다음 버스가 20분 후에나 올 거라는 안내를 보았을 때도 그렇고, 버스가 도착했지만 너무 붐벼서 타지 못하고 내 앞에서 끊겨 버렸을 때도 그렇다. 놀러 나가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쏟아질 때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면 세상에게 섭섭한 마음이 든다. 큰 불행이 닥쳤을 때보다 이런 사소한 불운이 일어났을 때 세상이 더 야속하다.


하지만 이건 내 입장에서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고 야속하다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세상의 말도 한번 들어 봐야 한다. 원래 다툼이 일어났을 때는 양쪽 입장을 다 들어 봐야 하는 거니까.


그러면 아마 세상은 억울해하며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세상이 정말 야속했다고 말할 수 있냐고. 너를 수도 없이 많이 도와줬는데 어떻게 그런 운 나쁜 경우만 기억하고 세상을 원망할 수가 있냐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운 좋은 사람이다. 일단 나는 아직까지 살아 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운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사소한 불운에 이렇게 불평불만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정말 운이 좋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운이 정말 좋았던 경우도 많았다. 앞서 예시로 든 사소한 불운들의 정반대였던 경우도 정말 많았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에 가까스로 올라탔을 때. 마침 갈아탈 버스가 곧바로 도착했을 때. 정류장에 도착하고 1분도 채 안 되어서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을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운 좋게도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을 때. 놀러 나가기로 한 날 날씨가 하루 종일 좋았을 때. 이런 날들도 꽤 많았다. 내가 나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고 이런 기억은 금세 잊어버렸을 뿐, 사소한 행운들도 내 인생에 정말 많았다.


그래서 이제 세상에 조금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연히 불운이 닥쳐도 그러려니 하면서 흘려보내야 나도 편하고 세상도 덜 억울할 테다. 사소한 불운에 짜증 내지 말고, 오늘은 불운이 닥쳤지만 내일은 행운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야겠다. 내가 덜 피곤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2023년 8월 20일,

소파에 앉아서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ared Rice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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