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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03. 2023

[D-120] 비우고 나누면서 살아야지

246번째 글

버리고 살아야 한다. 버릴 물건을 제때 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쓰레기가 되어 버리게 된다. 오늘 하루 종일 이 생각을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랍 정리를 했는데, 온갖 잡동사니가 서랍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대체 왜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애초에 왜 이걸 가지고 있기로 결정했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물건들이 서랍에 가득했다.


오늘 서랍에서 발견한 물건은 이런 것들이었다. 예전엔 잘 하고 다녔지만 줄이 끊어져 버린 목걸이. 한때 유행이어서 나도 샀었지만 실제로 하고 다니지는 못했던 머리핀. 옛날에 입던 옷에 달려 있던 단추. 무슨무슨 행사에 참석하고 받았던 핀 버튼. 끈 떨어진 큐빅 팔찌. 나는 이런 것들을 서랍에 잔뜩 쌓아 두고 있었다. 일부러 모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버리기 아까워서 한두 개씩 모아두었을 뿐인데 그런 것들이 쌓여서 서랍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물건들을 남겨 두었는지 알 것 같기는 하다. 끊어진 목걸이나 팔찌는 그걸 하고 다녔던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한 것이다. 머리핀은 수집용이었다. 그냥 예뻐서 샀고 서랍에 넣어두는 용도로 썼다. 핀 버튼은 행사에 참석했던 기억을 위해서 남겨 두었다. 단추는 반짝이는 것이 예뻐서, 언젠가 다른 옷에 달아서 쓰거나 다른 용도로 쓰겠거니 생각하며 넣어두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잊어버렸고, 이제 목걸이와 팔찌, 단추는 녹슬어서 쓸 수 없게 되었다. 머리핀은 색이 바래고 새까매졌다. 핀 버튼은 플라스틱이라 오래되어 끈적거리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버리기 아까워 모아둔 물건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되었다.


내가 이 물건들을 그때그때 잘 버렸다면 아마 오늘 이렇게 하루종일 서랍 정리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머리핀은 당시에 친구가 갖고 싶어 했었는데, 그때 그 친구에게 주었다면 오늘 버려지지 않고 잘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아까워하는 마음과 내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 나는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 물건을 간직했는데, 정작 물건은 쓰레기가 되고 추억만 가슴에 남게 되었다. 기념으로 무언가를 간직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굳이 갖고 있지 않아도 될 잡동사니로 가득한 서랍을 치우는 일이 되기도 한다.


어제 내가 죽었다면 내 서랍은 가족들에 의해 정리되었을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모아놓은 물건들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물건을 버리고 치우느라 고생하면서 왜 이런 쓰레기를 모아놨냐고 푸념했을 것이다. 그걸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비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나누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게 이런 서랍을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



/

2023년 9월 3일,

소파에 앉아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egan Bucknall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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