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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04. 2023

[D-119] 우리는 왜 스스로를 파괴하기를 좋아할까

247번째 글

인간은 참 이상하다. 인간은 스스로 생존에 불리한 선택을 한다. 잘 몰라서도 아니고, 그게 불리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다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다. 그냥 그러고 싶다는 아주 비합리적인 이유로. 그냥 좋아서라는 아주 비논리적인 이유로.


우리가 먹는 음식만 봐도 그렇다. 나는 햄버거, 피자, 핫도그, 치킨, 튀김 같은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끊을 수는 없다. 조절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그게 참 어이없는 점이다. 나를 망가뜨릴 것을 알면서 여전히 그것을 좋아하고, 여전히 그것을 먹는다는 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면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모르고 입에 넣은 거라고 해도, 혀에 닿는 순간 위험을 느끼고 뱉어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그게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부터는 완전히 꺼리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 음식이 나를 파괴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을 먹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잠도 마찬가지다. 나는 일찍 잠에 들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는 한데, 가끔씩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하다가 잠들기도 한다. 의사들이 가장 하면 안 되는 일로 꼽는 것이 그렇게 자기 전에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거라던데,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때로 그 '하면 안 되는 일'을 한다. 내일 아침 일어날 때 힘겨울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일 하루종일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밤에 스마트폰을 본다. 만약 이 행동이 그렇게나 건강에 안 좋은 거라면 본능적으로 그걸 싫어해야 맞는 게 아닐까? 왜 밤에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은 그렇게까지 재밌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세도 그렇다. 왜 몸이 편한 자세는 다 건강에 나쁜 건지.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있는 자세는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에 최악이라고 한다. 다리를 꼬는 것도 무릎을 망가뜨리는 원인이라고 하고, 옆으로 누워서 자는 것도 안 좋다고 한다. 근데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자세들을 우리가 편하게 느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 자세들이 최악의 자세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곧은 자세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리를 바르게 하고 곧게 서 있는 걸 가장 편하다고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우리는 그렇게 진화하지 않은 건지. 참 이상한 일이다.


스릴을 찾아 헤매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신기한 것 같다. 인류는 역사 내내 안전해지기 위해서 노력해 왔는데, 실제로 야생 상태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받게 되자 사람들은 스스로 위험을 찾아다닌다. 높은 절벽을 오르고, 긴 줄이나 낙하산 하나만을 메고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다리 위를 걷는다. 일부러 돈을 내면서까지 깜짝 놀라는 체험을 하고, 팔다리의 관절을 다 닳게 할 것을 알면서도 열렬하게 스포츠를 즐긴다. 그 외에 술이나 담배를 탐닉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어쩌면 인간의 지능이 너무 높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본적인 의식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자극과 더 큰 기쁨을 원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우리에게 '나쁜' 것이어도 재미만 있으면 즐기게 된 걸 수도 있다. 나는 생물학이나 뇌과학 전문가가 아니고 그냥 혼자 생각해 볼 뿐이지만 이 설명이 꽤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지능이 높아서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즐겁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


아니면 결국 다 자연선택의 산물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기호가 생존 확률을 높여 주었을지도. 예전에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을 때는 언제 다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름진 것을 최대한 많이 먹어 놓아야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그래서 기름진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더 오래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 습관이 먹을 것이 풍부해진 지금에도 남아서 이제 기름진 음식을 좋아할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히 그걸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화 속도에 비해서 인류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즐거움을 쫓는 것도 그게 스트레스를 줄여 주어서 생존 확률을 높여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잘 살아남아서, 즐겁기를 원하는 유전자를 물려준 건 아닐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더 많은 자극을 찾아서 헤맨다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닐지. 그런 생각도 든다.


정답은 관련 논문들을 좀 찾아보거나 책을 찾아봐야 알 것 같다. 분명 누군가가 이 점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를 해 놓았을 것이다. 쉽게 책으로 풀어서 써 놓았을지도 모른다. 왜 내가 나를 파괴하기를 즐기는지, 왜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서. 한번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대충이라도 공부해 봐야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공부해 보고 나서 글을 쓸 걸 그랬나 싶다. 약간 후회가 들지만 지금까지 쓴 걸 다 지워버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또 나를 파괴하고 있다.  :)



/

2023년 9월 4일,

식탁에 앉아서 거실에서 들려오는 스포츠 중계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ndras Malmo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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