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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05. 2023

[D-118] 분위기를 가꾸는 일

248번째 글

나는 스포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거의 모든 종목의 스포츠에 대해서 잘 모른다. 스포츠는 내 관심 분야와는 거리가 좀 멀기 때문이다. 애초에 관심이 없으니 경기를 챙겨보거나 룰 같은 걸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아는 건 더 적어져서 경기를 재미있게 즐기기가 어렵다. 스포츠를 재미있게 즐기려면 경기의 흐름을 읽는다거나 어떤 선수가 어떤 성향인지를 좀 알아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안 되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올림픽이 열릴 때만 스포츠 중계를 볼 뿐 평소에는 거의 관심 없이 지낸다.


그런데 나는 야구장에 가는 것은 좋아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야구 룰도 아주 기본적인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평소에 야구 중계를 챙겨보지 않는다. 가족들이 중계방송을 틀어놓으면 나는 소파에 앉아서 딴짓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야구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가는 것'이다. 나는 야구가 아니라 야구장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조금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다. 야구 룰도 잘 모르면서 야구장에 가는 것은 좋아한다니.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야구장에 가면 사람들은 응원하는 팀을 향해 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목청 높여 응원가를 부르고,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른다. 날씨가 무덥거나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지친 기색 없이 경기를 즐긴다.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즐겁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들뜬 기분을 함께 느끼며, 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고 함성을 지르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몰라도, 지금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마냥 즐겁다. 그 분위기 때문에.


이 '분위기'라는 것은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아주 기묘한 것이다. 분위기가 좋은 곳에 있으면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좋아진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면 커피가 맛없고 가격이 비싸도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분위기가 좋지 못한 곳에서 식사를 하면 음식 맛이 아무리 좋아도 기분이 가라앉고 만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주변에 놓인 가구, 조명의 세기, 창문의 위치, 울리는 소리 등, 그 공간을 구성하는 아주 다양한 것들 중 단 하나만 달라져도 분위기는 달라져 버린다. 그리고 이 달라진 분위기는 알 수 없는 메커니즘에 따라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기분이 땅에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주변을 둘러싼 이 수많은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다. 내가 자각하지 못했더라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차분한 마음씨를 갖고 있어도 주변이 어수선하면 마음도 어수선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주변 분위기를 잘 돌보는 것은 나 자신의 성격을 다듬고 가꾸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 같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을 때, 내 방이 포근하고 편안한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만드는 일. 텐션이 쭉 떨어져 있을 때 내 마음을 들뜨게 할 수 있는 곳에 찾아가는 일. 이런 일들은 내 주변 분위기를 적절하게 바꾸어 주고, 나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나를 둘러싼 분위기를 가꾸는 일. 이것 또한 나를 가꾸는 일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자, 내가 나 자신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호의이기도 하고 말이다.



/

2023년 9월 5일,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 자판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oshua Peacock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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