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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02. 2023

[D-121] 일상으로의 초대

245번째 글

오늘 친한 언니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힘든 시절을 나와 함께 보냈던 언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단단한 사람이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남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이 언니는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이 언니는 당시엔 남자친구였던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내게 알려주었다. 혼자 즐기는 내 공간, 내 시간, 내 생활이 너무 소중해서 결혼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언니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왜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느냐고. 그러자 이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정말 편안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데이트가 끝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고. 그래서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루 종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을 하고 같이 살고 싶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이다. 그 사람의 일상과 자신의 일상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어서.


그 말을 듣자 신해철의 노래 '일상으로의 초대'가 떠올랐다. 이 노래 역시 내게 사랑하는 감정에 대해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노래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중에서.


나는 연인 간의 사랑을 아직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을 어떤 거대한 것으로 생각하곤 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감정이고, 어떤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 노래도 그 언니의 말도 사랑을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완전히 마음으로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엿볼 수는 있었다. 일상을 함께하고 싶다는, 나의 생활 속에 들어와 달라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도.


나는 아직 내 시간과 공간과 생활이 소중하다. 혼자서 즐기는 일상이 너무나도 재미있고, 외로움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 내게는 용기가 없다. 내 일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겠다는 결심을 할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그렇게 공유함으로써 나의 치부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 두렵고, 내 영역이 침범당해서 생기는 불편을 감당해야 할 것이 두렵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이 언니처럼, 그리고 언니의 남편분처럼, 스스로의 일상에 서로를 초대하고 싶다는 용감한 생각을 한다.


오늘처럼 맑고 화창한 날,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결혼한 이 부부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

2023년 9월 2일,

식탁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Thomas William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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