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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09. 2023

[D-114] 직관적으로 내린 판단

252번째 글

도둑질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둑질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득을 얻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또 몇몇은 사회 분위기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한번 도둑질을 하게 되면 손버릇이 나빠져서 계속 도둑질을 하게 되므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라면 어떨까? 어떤 할머니가 방금 구운 빵을 식히려고 부엌 창가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마침 우연히 그 집 옆으로 지나가던 김 씨가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창가에 놓인 빵을 하나 집어먹었다. 할머니가 구운 빵은 모두 6덩어리였는데, 할머니는 빵을 오븐에서 꺼냈을 때부터 숫자를 잘못 세어서 5덩어리의 빵을 구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뒤 부엌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당연히 빵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할머니는 살림이 넉넉하고 취미로 베이킹을 하는 거라서 빵 한 덩어리 사라진 것은 할머니에게는 큰 손해가 아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평소에 새들을 먹으라고 빵을 일부러 밖에 놔두기도 하기 때문에 빵이 사라진 것을 알았어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김 씨는 자신이 빵을 훔쳐 먹은 것을 반성했고, 그 뒤로 다시는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오히려 김 씨가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김 씨는 일자리를 구했고, 첫 월급을 받자마자 할머니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빵값을 지불했다. 이후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김 씨는 자선사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이 이야기에서 할머니는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사실조차도 몰랐고, 나중에 김 씨가 대가를 지불해서 피해를 보상받기도 했다. 또 김 씨는 이 이후로 도둑질을 하지 않았으므로,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케이스도 아니다. 오히려 이 도둑질은 김 씨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김 씨의 자선사업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앞서 도둑질을 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대답했던 말들은 이 경우에는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우리는 김 씨가 빵을 훔친 그 행위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도둑질이라는 사실, 그리고 도둑질은 나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여전히 '김 씨가 빵을 훔친 것은 잘못되었다'리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둑질은 나쁘다.' 이 아이디어가 우리 머릿속에 아주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도둑질에 대한 거부감이 본능적으로 있기 때문에, 김 씨와 할머니의 이야기 같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도둑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직관은 가장 기본적인 판단 방법이다. 직관이 먼저고, 그 이후에 논리가 따라온다. 나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렇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직관이 내린 판단이 옳은지 틀린지를 고민하면서 논리와 이성, 감성 등으로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이렇게 직관은 빨리 발동하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고 믿음직하기도 하다. 직관적으로 내린 판단은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인류가 생존하면서 남은 본능의 결과이므로, 웬만하면 믿을 수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인류가 생존하는 데에는 선과 악이 모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인류는 오랫동안 폭력과 차별과 혐오를 생존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내린 판단은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폭력과 차별과 혐오를 재현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2023년 9월 9일,

TV 앞에 앉아서 웃음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acky Watt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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