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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16. 2023

[D-107] 완벽하지 않았어

259번째 글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완벽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유일한 오점이라는 생각.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내가 다 망쳐버리고 있다는 생각. 나만 없으면 완벽했을 텐데 내가 그 속에 존재한 탓에 균열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고 위태로워졌다는 생각을 말이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꽤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다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생각을 더 강화시키지 않았나 싶다. 별달리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늘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기회들이 주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내 주변 상황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내 주변의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았다.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막연한 환상에 불과했다. 나 자신을 아는 것만큼 내 주변은 잘 모르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버린 것이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집안은 화목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다정하시고 헌신적이시고 존경받을 만한 분들이셨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와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지만 우리의 자매 관계도 완벽하지 않았다. 나의 학창 시절은 완벽하지 않았고, 직장생활도 완벽하지 않았고, 나의 성장 과정도 완벽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친구들도 완벽하지 않았다. 모두 결함이 있었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좋은 점이 있는 것처럼 그렇지 않은 점도 많았다. 나는 단지 나를 깎아내리고 상처주기 위해서 내 주변 환경이 '완벽하다'라고 치부해 버렸던 거다.


이렇게 내가 유일한 오점이라고 생각하면 괴로워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편해지기도 한다. 내 주변 환경은 모두 완벽하다고 여겨 버리면 문제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문제, 친구와의 문제, 학교나 직장에서의 문제를 가리고 덮어서 안 보이게 하고, 오직 나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해 버리면 편하다. 그러면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오직 1가지, 나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나만 나아지고 나만 변화하면 모두 다 해결될 거라고 믿으면 문제는 단순해진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그룹에 문제가 있다면, 그 그룹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문제가 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주 많은 부분을 동시에 건드려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만 바뀐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거대한 문제와 복잡한 해결책을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미워하고 내게 상처를 주기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비겁한 마음일 수도 있다.


내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단 한 번도 완벽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유일한 오점이 아니고, 이 세상을 이루는 조각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복잡하고, 나와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은 함께 그걸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나 자신의 문제라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더 괴로워지고 상처는 더 깊어지고 문제는 더 커지니까.



/

2023년 9월 16일,

소파에 앉아서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Joshua Woroniecki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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