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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15. 2023

[D-108] 외로움에서 건강한 고독으로

258번째 글

나는 외롭다. 때때로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내 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서서히 몸이 식어가는 기분이다. 들이쉬는 숨은 짧게 끊기는데 내쉬는 숨은 끝없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렇게 숨을 다 쉬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하게 허물만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채울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일단 내가 혼자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외로움은 때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느껴진다. 곁에 누가 있고 없고는 외로움의 조건과 거리가 있다. 심지어 나는 혼자 있는 것을 꽤 좋아하기까지 한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과 혼자 있을 때의 고요함이 좋다. 내 취미도 글쓰기, 독서, 영화 보기, 공연보기, 음악 듣기처럼 대부분 혼자서 하는 일들이다. 나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이런 일들을 할 때 즐겁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재미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겐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혼자라는 데에서 외로움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나는 때때로 이런 외로움에 잠식당하는 걸까. 그 답을 김광석의 노래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너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때문이야.'라고. 내가 외로운 것은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이 병들어 있는 까닭이다. 내가 나의 모순점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용감한 사람이라면, 나는 내내 혼자여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때로 혼자 있는 것에 질려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어도 혼자 있어서 외롭다거나 같이 있어도 외롭다는 기분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는 강박,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집착에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나를 사랑하기를 꺼리고 있어서 여전히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외로운 건,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보듬어 주어야 할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나의 외로움은 건강한 고독의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다. Loneliness에서 Solitude로 말이다. 혼자 있는 상태인 solitude에서는 내가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나의 공간으로 초대할 수도 있고, 내가 다른 사람의 공간으로 방문할 수도 있다. 심심하다면 그 심심함을 해소할 다른 많은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관계 속에서 즐거워하다가도 다시 내 공간으로 돌아와 차분함을 즐길 수 있다. 외로워하지 않고도 혼자서 즐겁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외로움에서 이런 solitude의 형태, 중심이 잡힌 건강한 고독의 형태로 삶을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자신을 사랑한다면.



/

2023년 9월 15일,

식탁에 앉아서 창문 밖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ike Smith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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