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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1. 2023

[D-102] '귀찮다'는 말 쓰지 않기

264번째 글

'귀찮다'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 '귀찮다'라는 말은 너무 많은 감정과 너무 많은 상태를 전부 포괄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상황이 '귀찮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고, 아주 다양한 경우에 나는 '귀찮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말은 내 감정을 뭉뚱그려 버린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그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귀찮음이 있다. 예를 들면 해야 하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 일어나서 그 일을 하기엔 체력이 부족할 때. 또는 너무 지쳐서 피곤하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그 일을 하기 꺼려질 때. 아니면 성가신 일이라서 하기 싫은 경우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라서 미루고 싶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일로 이미 바빠서 거기까지는 신경을 못 쓰는 상황에도 귀찮아질 수 있다. 매일 하는 일이라서 틀에 박힌 것처럼 느껴지고 즐겁지 않은 것도 귀찮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저 '귀찮다'라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리기에는 그 안에 너무나도 다양한 상황과 이유와 감정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이 모든 경우를 그냥 '귀찮다'라고 표현해 버리면, 나는 그냥 이 귀찮은 상태에 잠겨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아니면 귀찮아하면서도 꾸역꾸역 그 일을 하느라 괴로워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예시로 든 것처럼 조금 더 파고들어서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면 내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체력이 부족하다면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서 그 일을 하면 된다. 피곤하고 휴식이 필요하다면 역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그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성가신 일이라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눈 딱 감고 앉아서 하는 게 낫다.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정말 해야 하는지,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깊이 고민해 보는 과정을 거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너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이면 역시 도움을 청해 보거나, 잠시 미뤄 둘 수 있는지를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의논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틀에 박힌 일이라 하기 싫은 상황이라면 잠깐의 기분 전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자세히, 다양하게 상황을 인식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귀찮다'라고 말할 때와는 다르게 말이다.


나는 이 '귀찮음'의 늪에 자주 빠지는 사람이다. 나는 자주 귀찮은 기분을 느낀다. 원인과 감정과 상황은 다양하지만 이 '귀찮음'의 넓은 스펙트럼에 들어가는 감정 상태에 자주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가 귀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귀찮다는 말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말이 아니라 다른 말로 풀어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내 상황을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야 이 '귀찮음'의 무기력함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2023년 9월 21일,

버스에 앉아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Cara Beth Buie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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