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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0. 2023

[D-103] 쉼의 모순

263번째 글

열흘 전부터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원래 매일 30분 정도씩만 하던 유산소 운동을 1시간으로 늘렸고, 러닝머신을 뛸 때 경사를 더 가파르게 설정해 놓고 하고 있다. 주 2회씩 하던 PT도 3회로 늘렸다. 이제 어느 정도 기본기는 다졌으니 좀 더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유도 있고, 추석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추석에는 운동도 쉬엄쉬엄 하게 될 것이고 기름진 명절 음식도 많이 먹을 테니까. 그래서 9월 초부터 조금 더 많이, 더 세게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제는 스트레칭을 하고 30분 동안 사이클을 탄 것 외에는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아령을 이용한 운동도 했을 것이고 러닝머신도 탔을 텐데,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날 운동으로 생긴 근육통도 아직 남아 있고 출퇴근도 고되고 자꾸만 눈이 감겨 와서 오늘은 그냥 적당히 하고 일찍 자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쯤 하루 쉬어 줘야 컨디션도 회복하고 앞으로 더 운동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사이클을 타고 씻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내일 아침에는 개운하고 상쾌한 컨디션으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컨디션은 기대 이하이다. 오히려 어제보다 더 좋지 않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눈꺼풀이 무거웠고 아침 일찍 헬스장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손에 든 아령이 평소보다 더 무거웠다. 하루 쉬면 훨씬 더 활기 넘치는 내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제 쉬어서 그런지 몸이 굳은 느낌이었다. 어제 평소처럼 운동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컨디션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쉼의 모순되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적당히 휴식을 취해야 컨디션이 좋아지고, 어떤 경우에는 휴식을 취해서 컨디션이 더 나빠진다. 쉬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고, 쉬면서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해이해지는 경우도 있다. 한 번 쉬면 괜찮아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한 번 쉬어서 주춤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쉬어 보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를 맛보게 될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지금 쉬어야 할 타이밍인지 좀 더 나를 몰아붙여야 할 타이밍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몇 가지 참고할 수 있는 지표는 있지만 결과가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걸 염두에 두고 쉬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기대와 내일의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고 내일의 결과를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일 더 괜찮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 오늘 쉬기로 마음먹었다면, 내일의 컨디션이 더 저하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둬야 한다. 그럴 경우를 위해서 내일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미리 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해이해지거나 늘어지지 않도록. 반대로 내일을 위해서 오늘 나를 조금 더 몰아붙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내일은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럴 수도 있으니까 내일 나를 조금 더 챙기고 너무 지쳐 녹초가 되지 않도록 잘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오늘부터 해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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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0일,

버스에 앉아서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Olesya Grichin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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