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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2. 2023

[D-101]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265번째 글

내가 감정기복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에서 동료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말이다. 내가 그다지 기복이 없고 늘 잔잔한 상태처럼 보인다고, 차분하고 침착해 보인다고.


나는 스스로를 아주 감정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식으로 보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나는 감정적이고 기분이 자주 왔다 갔다 하고 감정기복이 상당히 커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큰 폭으로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잦아들지 않는 허리케인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처럼 나는 매일같이 수많은 감정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가 그렇게 보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적어도 내가 내 감정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가 적어도 직장에서는 감정적으로 굴지 않았다는 뜻이니 다행이다,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차 싶었다. 내가 또 나를 낮추어 생각하고 미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진짜 모습을 감춰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 동료들의 눈에 내가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유는 내가 겉으로 내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감정을 속으로 삭인다. 모든 걸 혼자 안고 가려고 한다. 혼자서 끙끙대고 혼자서 참아보려 애쓴다.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나는 티를 내지 않는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드러내면 공격받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또 내가 감정을 티 내면 주변에서 성가셔하고 신경 쓰여해서, 미움받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내 이런 내색하지 않는 태도가 나의 소용돌이치는 내면과 차분해 보이는 외면 사이의 갭을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 표정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얼굴과 높낮이가 크지 않은 목소리 톤도 한몫했을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계속 가면을 쓰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직장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것은 괜찮지만, 이런 식으로 쭉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직장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계속되면 누구도 나의 고통과 괴로움을 볼 수가 없게 된다. 그저 나 혼자만, 내 속만 썩어 들어가게 되는 거다. 이런 건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나 자신에게도, 이 팀 내에서도. 


그래서 이젠 조금씩 내색을 해보려고 한다. 일이 힘들면 힘든 티도 좀 내고, 그러면서 서로 공감도 하고, 밥 먹을 때 서로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풀어도 보고. 그렇게 함께 성장도 한번 해 보고.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굴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속으로 감추기만 했던 마음들을 조금은 오픈해 보이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건강한 팀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

2023년 9월 22일,

소파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활 소음들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Ricardo Gomez Angel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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