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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3. 2023

[D-100] 들여다보고 싶어

266번째 글

같은 것을 보아도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같은 영화를 보아도 감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같은 문장을 읽어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란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어도 나의 마음과 그 사람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점이 가끔씩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알 수 없다는 점이. 짐작할 수는 있고 추측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점이 서럽다. 나의 마음을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거라는 사실,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결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조금 외롭게 만든다. 내 주변에는 가까운 친구도 있고 소중한 가족들도 있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득 외로워진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말,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싶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는지, 얼마만큼의 의미로 기억되는지를 알고 싶다. 마음을 열고 들어가서 한번 훑어볼 수 있기라도 하면 좋겠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자리를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싶다.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그걸 조절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고,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대상에게는 행복한 기억으로, 나의 존재를 그다지 인식시키고 싶지 않은 대상에게는 스쳐 지나가서 영영 잊히는 기억으로, 나를 많이 알아주고 잘 기억해줬으면 하는 대상에게는 커다란 존재감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조절할 수는 없더라도 결과라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남았는지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인생의 묘미가 아니겠냐는 말로 웃고 넘기기에는 조금 슬프고 간절하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고, 늘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이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일 테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고만 싶어서.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에 매여 있는 건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런 생각이 이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진다.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더 효율적이고 괜찮은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은 여기에 적어 두고 덮으려 한다.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을 들여다보려고 너무 많이 노력하다 보면 결국 상처받는 것은 나일 테니까.



/

2023년 9월 23일,

소파에 앉아서 TV 광고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Dylan Freedom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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