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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an 18. 2023

[D-348] 억울한 버스를 위한 항변

18번째 글

어제자 에세이(글 보러 가기)에서 '지하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며 내가 지하철을 버스보다 좋아하는 이유를 가득 적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 버스를 탔는데,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두 번씩 버스를 꽤 오래 타고 다니는데 버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나는 몇몇 이유들 때문에 지하철을 더 선호할 뿐 버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는 버스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기도 해서, 오늘자 에세이는 버스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버스의 가장 좋은 점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정류장이 길가에 있다는 점을 들 것이다. 그래서 계단을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답답한 지하 공기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버스는 나만의 공간에 있을 수 있어서 좋다. 지하철은 좋든 싫든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와 마주 보며 가야 하는데 버스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앞사람 머리나 등받이만 보면 되니 좀 더 편안하고 프라이빗한 느낌이 든다. 버스가 붐비지 않을 때는 옆자리에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아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서 좋고, 혼자 앉아서 나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또 버스에는 창문이 있다. 지하철에도 창문이 있긴 하지만 자리에 앉으면 밖을 보기 쉽지 않은데, 버스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맘껏 밖을 내다보면서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덜 답답한 느낌이 든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할 수도 있고, 햇빛을 받을 수도 있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기분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버스는 탈 때와 내릴 때 기사님께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를 전할 수도 있어서 좋다.


정류장이 길가에 있다는 것은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버스들이 같은 곳을 오간다는 것도. 그게 버스의 재미있는 점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내 앞에 어떤 차가 멈추어 설지 알 수 없다. 물론 지도 앱도 있고 정류장마다 전광판이 있고 안내 방송까지 나오긴 하지만 그 얘기는 잠시 미뤄 두어도 될 것 같다. 어디까지나 지하철과의 비교에서 시작한 글이니까. 지하철 1호선을 타면 1호선 차가 올 것을 기대하며 폰만 보고 있어도 되지만 버스는 그렇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면 자주 고개를 들어야 한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했는지, 또 지금 내 앞에 선 이 버스가 내가 타는 차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버스를 잘 타고 다닐 수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더 많이 둘러보게 되고, 더 많이 신경 쓰게 된다. 승객이 아닌 버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버스는 저 앞 정거장에 탈 사람이 있는지, 다음에 내릴 사람이 있는지를 계속 신경쓰면서 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버스를 타면 피곤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주변을 신경써야 한다는 것, 그것 한 가지는 버스에게서 배울 점이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갓 태어났을 때조차 혼자가 아니었고 평생 동안 혼자가 아니었다. 단순히 가족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수많은 관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주변을 더 많이 둘러보아야 한다. 내 주변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가에 정류장이 있지는 않은지, 그 정류장에 누군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누군가를 못 보고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멈추어 서서 버스의 문을 열어 주는 것만으로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까지.


그래서 어제 적은 것과는 다른 의미로, 나는 버스 같은 사람도 되고 싶다. 앞만 보고 달리거나 나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고, 꾸준히 주변을 살피고 둘러보며 타인의 삶도 세심하게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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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8일,

침대에 엎드려서 유튜브로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인창 김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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