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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8. 2023

[D-95] 내 세계를 바꿀 순 없어

271번째 글

비틀즈의 노래 'Across the Universe'의 후렴구에는 이런 가사가 반복된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어떤 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요)." 어린 시절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 가사가 슬프고 우울하다고 생각했었다. 노래의 첫 구절에서 이야기하듯이 말들과 감정들이 내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지만, 그 어떤 말과 감정도 나를 바꿔놓을 수는 없었다는 비관적인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희망을 잃고 무기력하게 읊조리는 거라고 노래를 해석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런 헛된 기도뿐인 상태인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래지만 슬픈 노래라고 생각했었다.


Words are flowing out like 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They slither wildly as they slip away across the universe
Pools of sorrow, waves of joy are drifting through my opened mind
Possessing and caressing me

Jai Guru De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단어들은 종이컵에 끝없이 쏟아지는 비처럼 흘러내려요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져서 우주 너머로 사라져 버리죠
슬픔의 웅덩이, 기쁨의 파도가 내 열린 마음속을 떠다니면서
나를 사로잡고 어루만지네요

Jai Guru Deva, Om
어떤 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요

- 비틀즈, 'Across the Universe' 중에서


하지만 이젠 이 노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어떤 것도 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요)."라는 가사로부터 단단한 내면을 읽는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본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수많은 말들도, 내가 느끼는 감정들도,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도, 모두 나를 파괴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나의 본질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그 어떤 것도 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다.


누가 어떤 말로 나를 깎아내리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이다.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랑하는 것들이 내게 갖는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다. 수많은 감정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 너덜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도 그 감정을 담은 나의 마음은 내 것이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고,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 그 세계는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뒤라도 그대로 유지된다. 상처가 남고 잔해가 나뒹굴 수는 있어도 여전히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이 내게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내 세계를 무너뜨리게 놔두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나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 내게 이 노래는 그런 결심으로 다가온다. 외부의 그 어떤 공격에도 내가 나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 다짐, 희망으로.


비틀즈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문득 장기려 박사의 이 명언을 떠올리고 있다.


나의 세계는 내가 사랑하는 곳에 있다. 그곳이 나의 왕국이다.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 장기려 박사



/

2023년 9월 28일,

소파에 기대앉아서 유튜브로 비틀즈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Billy Huynh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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