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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9. 2023

[D-94] 며칠이나 남았을까

272번째 글

추석을 떠들썩하게 보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어릴 때는 친척집에서 다 같이 모이기도 하고 집에서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나눠 먹기도 하고 송편도 직접 쪄 먹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이제 명절날의 풍습은 많이 달라졌다. 친척들끼리는 가벼운 안부 연락만 주고받고,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밖에서 만나서 식사를 한 번 하는 것으로 추석 인사를 대신한다. 명절 음식도 밀키트나 배달 음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명절 풍습이 변한 지 거의 십 년이 넘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쪽의 변화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늘도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와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몇 달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 맞는 큰 명절이었다. 이렇게 외식을 하러 나갈 때는 우리 가족과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늘 6명 자리를 예약했었는데, 오늘은 5명으로 식당에 예약을 했다. 그게 낯설었다. 6명이 아닌 5명이서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것도, 늘 쾌활하셔서 말씀이 많으셨던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서 식사 자리가 다소 조용했던 것도,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아직 계셨다면 생기지 않았을 이런 일들이 어색하기만 했다.


할아버지를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나는 내가 앞으로 몇 번의 추석을 할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지만 언젠가 우리 가족이 추석에 4명 자리를 예약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별은 언제나 예정되어 있다. 나와의 이별뿐만 아니라 나의 이별도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내가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추석은 과연 몇 번일까? 내가 이 세상에서 보낼 수 있는 추석이 며칠이나 남았을까? 굳이 헤아려 보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다. 이별하고 싶지 않다. 소중한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이 삶을 영원히 살아가고 싶다. 죽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지만 이별하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이제 내 삶에서 남은 추석은 백 번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추석 중 하루가 오늘 흘러가 버렸다. 오늘은 어쩌면 내가 보내는 마지막 추석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고 미래는 알 수 없고 나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추석을 과연 후회 없이 잘 보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되돌아보고 있다.



/

2023년 9월 29일,

침대에 엎드려서 TV 소리 들으며.



*커버: Image by Guillaume de Germai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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